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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01 20:32 수정 : 2015.11.02 10:13

안근모의 글로벌 모니터

삽, 괭이 같은 기구로만 농사를 짓던 마을에 경운기 한 대라도 보급되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똑같은 일을 하는 데에도 노동력이 훨씬 적게 들어간다. 남게 된 노동력으로 과거보다 더 많이 경작할 수가 있으니 소출이 대폭 늘어난다. 여기에 온갖 기계와 기술이 더 투입되면 될수록 생산성과 산출량은 가속도를 내며 증가하게 된다. 우리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의 산업화와 고도성장 과정이 이런 식이었다. 최근 20년 사이에 가장 두드러진 곳이 중국이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산업화를 통해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해마다 10% 안팎씩 급증하며 전세계에 값싼 상품을 쏟아냈다. 전세계에 강력한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했다. 지금 미국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내구재의 평균 가격은 1995년에 비해 33%나 떨어졌다. 앞으로도 계속 더 떨어질 게 분명해 보인다.

전세계를 하나의 단일 경제라고 볼 때 중국의 산업화는 생산성 혁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과거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공산품을 사 쓸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남은 소득으로는 다른 곳에 소비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였다.

그러나 이 ‘좋은 디플레이션’은 많은 부작용도 낳았다. 지난 9월 현재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20년 전에 비해 493만개, 29% 격감했다. 생산설비가 개도국으로 이동한 탓이다. 자본 투자자들은 생산비용이 줄고 이윤이 높아져 큰돈을 벌었겠지만 중산 노동계층의 소득은 위축됐다. 낮은 물가상승률에 안도한 중앙은행들은 저금리 정책으로 충격을 막으려 했다. 쪼그라든 중산층은 빚을 내서 집을 사고 소비했다. 결국 자산 가격은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뒤 무너졌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농촌 마을도 자본집약도가 일정 수준에 이르게 되면 생산성과 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둔화되기 마련이다. 중국 경제가 이제 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이른바 ‘신창타이’(新常態), 중국판 ‘뉴 노멀’(new normal)이다. 지난 3분기 중국의 경제는 21세기 들어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금융위기 때 석달의 예외가 있었을 뿐이다. 최근 리커창 중국 총리는 “7% 성장이 절대불변의 약속일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신창타이’는 성장 둔화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고정자산 투자 중심의 성장에서 소비를 기반으로 한 경제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성장에는 과거처럼 막대한 양의 원자재가 소모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추락한 이유다. 성장속도의 둔화, 성장구조의 변화를 배경으로 한 중국의 전환은 그래서 전세계에 다시 한번 강력한 물가하락 압력을 가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는 제2국면에 진입했다.

이 역시 본질적으로는 ‘좋은 디플레이션’이다. 중국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전세계의 자본과 자원을 다른 곳의 사람들이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들은 훨씬 싼 가격으로 에너지와 원자재를 소비할 수 있게 됐다. 다른 곳에 쓸 돈이 늘어난다.

이 디플레이션 또한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다.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던 나라들, 원자재 생산국에 수출하던 기업들, 중국에 중간재와 자본재를 판매하던 기업과 나라들, 이 모든 국제 물동량을 수송하는 서비스 관련 운송장비 제조 부문이 충격을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주요국들의 서비스 산업이 호조를 보이는 반면, 광산 및 제조업은 크게 위축되는 양상이다. 두번째 디플레이션 역시 차별성, 이중성을 띠는 것이다.

1차 디플레이션 때와 마찬가지로 중앙은행들은 이 충격을 돈풀기 정책에 의존해 대응하고 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오는 12월 금리인상에 나설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으나, 그 이후에는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완화적인 긴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신흥국 경제의 안정이 미국의 이익에 긴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지금 역사상 가장 큰 비중(GDP의 13~14%)으로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며, 수출의 절반가량은 중국 등 신흥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만약 공격적 금리인상으로 신흥국이 무너지면 미국 경제도 함께 침체돼 금리를 급히 다시 내려야 할 것이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유럽중앙은행(ECB)은 돈을 더 풀 태세다. 저유가로 인한 장기 저물가 위험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미국의 ‘완화적인’ 긴축이 야기할 달러 약세, 그로 인한 유로화 절상 압력을 우려하는 듯하다. 유럽중앙은행이 추가 부양 가능성을 예고한 바로 다음날 중국은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인하했다. 일본은행도 돈을 더 풀 것이란 기대감이 금융시장에 만연해 있다. 13년 전 중국발 디플레이션 위험이 고개를 들 당시에 일본이 제창했던 ‘3+1(미국, 유럽, 일본, 중국) 공조 부양정책’이 현실화하는 양상이다. 4대국의 경쟁적 완화정책은 다른 나라들의 경쟁적 동참을 유도, 압박한다. 디플레이션 제1국면 때와 마찬가지로 거품과 부실의 위험이 통화량과 함께 부풀어 오를 수 있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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