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08 20:26
수정 : 2015.11.0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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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제약사인 화이자의 로고가 지난달 29일 뉴욕 증권거래소 전광판에 비치고 있다. 지난해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인수에 나섰다가 실패한 화이자는 최근 아일랜드 더블린에 본사를 둔 앨러건과 인수합병 협상을 하고 있다. 화이자뿐만 아니라 올해 세계적 기업들의 인수합병 협상이 활발하다. 뉴욕/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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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거래 규모 벌써 4617조원
금융위기 전 2007년 기록 깰 듯
100억달러 이상 거래 비중 37%
저금리 기조·기업 성장 저하 탓
대규모 인수합병(M&A)인 ‘메가 딜’이 올해 붐을 이루고 있다.
최근 금융정보 업체 딜로직은 이달 3일까지를 기준으로 따지더라도 올해 세계 인수합병 거래 규모가 4조600억달러(약 4617조원)에 이르러, 2007년 같은 기간의 3조9300억달러(약 4469조원)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2007년은 세계 금융위기 발발 한해 전으로 시장의 거품이 꺼지기 직전이던 때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 인수합병 거래 규모는 2007년 전체 기록을 깰 듯 보인다. 올해 인수합병 거래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 2조9400억달러(약 3343조원)에 견주면 38%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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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수합병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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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메가 딜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딜로직 자료에 따르면 거래 규모 100억달러(11조3720억원) 이상 거래가 전체 인수합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37%에 이르렀다. 지난해의 21%에 견주면 비중이 거의 갑절 가까이 커졌다. 2005년 이후 같은 기간으로 비교해 봤을 때도 거래 규모 100억달러 이상 거래가 전체 인수합병에서 30% 이상을 차지하는 일은 올해가 처음이다.
올해 손꼽을 만한 메가 딜만 해도 대여섯건에 이른다. 대표적인 경우가 세계 1위 맥주업체인 에이비(AB)인베브가 지난달 2위 업체인 사브밀러를 639억파운드(111조7834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한 일이다. <시엔비시>(CNBC)에 따르면 에너지업체인 로열더치셸과 영국 비지(BG)그룹은 815억달러(92조6818억원)에 이르는 인수합병안에 합의했으며, 미국 거대 식품업체 하인즈와 크래프트푸드는 626억달러(71조1887억원) 규모의 기업합병 절차를 마무리했다.
협상이 진행중인 메가 딜은 더 있다. 비아그라로 유명한 미국 제약업체 화이자는 최근 보톡스로 유명한 회사 앨러건과 인수합병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회사가 합병에 성공하면 기업가치가 3000억달러(341조1600억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제약회사가 탄생할 수 있다. 호텔업계에서는 최근 하얏트가 쉐라톤, 세인트레지스, 더블유(W) 호텔 같은 브랜드로 유명한 ‘스타우드 호텔 & 리조트 월드와이드’와 인수합병 협상을 하고 있다. 기업가치 약 72억3000만달러(8조2219억원)인 하얏트는 기업가치가 127억5000만달러(14조4993억원)로 자신보다 훨씬 큰 스타우드가 매물로 나오자 관심을 보였다. 하얏트는 보유 객실 수 약 16만개로 객실 수 기준 세계 10위인데, 세계 5위인 스타우드(35만개)를 인수하면 단숨에 호텔업계 최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다.
올해 세계 기업들의 인수합병이 붐을 이룬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 원인이 거론된다.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로 기업들이 인수합병에 필요한 자금을 비교적 싸게 조달할 수 있는 게 우선 꼽힌다. 미국은 적어도 연말까지는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로 유지할 것이고, 유럽중앙은행(ECB)은 기준금리를 연 0.05%로 유지하지만 예금금리는 -0.2%로 운용하고 있다.
두번째는 세계 경제가 쉽게 회복되지 못하면서 기업들이 자체 사업으로는 매출 및 수익 확대가 쉽지 않게 되자, 인수합병을 통해 외부로부터 성장동력을 찾으려 하는 데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스앤피(S&P)캐피털 아이큐(IQ)의 리치 페터슨은 <시엔비시>에 “인수합병이 활황인 데는 기업들의 보유 현금이 많고 대출을 싸게 할 수 있으며 주식 가격이 높아서 기업 인수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되어 있다”며 “기업 이익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인수합병 거래 가속화의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메가 딜이 인수합병 시장을 주도하면서 전체 인수합병 거래 건수는 오히려 줄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수합병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0월 인수합병 거래 규모는 5140억달러(584조5208억원)로 사상 5번째이지만, 거래 건수는 2177건으로 1996년 10월 이후 월별로는 가정 적었다고 전했다. 투자은행 그린힐의 최고경영자(CEO) 스콧 복은 <오스트레일리안 비즈니스 리뷰>에 “거대 기업들이 핵심 사업 위주로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세계 인수합병은 100억달러 이상 거래가 주도하고 있다. 에이비인베브와 사브밀러의 인수합병이 극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인수합병 자체에 대한 우려도 있다. <뉴욕 타임스>는 거대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계속 반복하는 경향이 있고 이는 새로운 기업의 탄생을 방해하며, 결과적으로는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고 소득 불평등 심화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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