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북부 타밀반군의 거점도시인 키리노치의 해변마을 팔리에서 어부 미리실린이 내전에 이어 다시 삶의 현장을 덮친 해일 피해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막막한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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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민 기자 해일 참사 현장을 가다]
‘세번째 전쟁’ 마을 초토화
“반군 조직적 구호활동”
한국 의료진 18명 봉사중 “우리는 세 번 죽었다.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스리랑카 북부 타밀 거점도시 키리노치의 해변마을 팔리에 사는 어부 미리실린(52)은 지난달 26일 그의 어머니와 생계수단을 모두 앗아간 지진해일을 ‘세번째 전쟁’이라고 불렀다. 미리실린이 사는 지역은 스리랑카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자프나섬과 20㎞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지난 10여년 정부군와 타밀엘람해방호랑이(이하 타밀반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현장이기도 하다. “1992년에는 스리랑카 정부군이, 2002년에는 타밀반군이 우리 마을에 들어오더니, 이제는 해일이 들어와 모든 것을 앗아갔다.” 미리실린은 담담하게 말했다. “26일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굉음이 들려왔다. 정부군의 공격이 시작된 줄 알았다.” 미리실린과 부인은 아이들을 한 명씩 데리고 뛰었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모는 파도에 휩쓸려 유명을 달리했다. 해일은 대부분이 초가인 팔리 같은 해변마을을 초토화했다. 타밀반군은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자프나·키리노치·물라이티부 등에서 사망자가 1만8천명, 실종자가 2만여명으로 추산된다고 6일 밝혔다. 현재 대부분의 이재민들은 타밀반군이 학교 등에 세운 구호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이 시설들은 타밀반군의 구호기구인 타밀부흥기구(TRO)가 운영하고 있다. 구호소에서는 스웨덴·노르웨이 등 국제 비정부기구 관계자들이 함께 의료봉사 활동 등을 벌이며 이재민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상황은 형편없었지만, 구호작업은 상당히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현지에서 만난 노르웨이 비정부기구 관계자 에드워드 미비는 “타밀반군들이 탁월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상당히 훌륭히 구호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만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호소에 있는 사람들은 스리랑카 정부가 고의로 타밀지역 복구를 미루고 있다고 믿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 구호물자는 해를 넘겨서야 도착했다. 언론에도 우리 가난한 타밀 사람들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남쪽의 잘사는 갈 지역 이야기만 전한다.” 구호소에서 만난 이재민 마두트리나이아감이 불만을 표시했다. 타밀반군 현지 공보담당 다이야 마수르는 “콜롬보 언론에 나온 타밀반군이 정부의 구호물자 전달을 막고 있다는 보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인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전날 콜롬보에서 만난 티사 비타레나 스리랑카 과학기술부 장관(사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대리)은 “타밀반군이 타밀부흥기구로 구호 통로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고집했다”고 비난했다. 한편, 키리노치 현지 병원에서는 국립의료원과 국제보건의료 발전재단 등에서 파견한 의사 6명을 비롯한 한국 의료진 18명이 31일부터 활동하고 있다. 단장인 황정연 국립의료원 응급의학과장은 “이 병원에는 외과의사가 없어 우리 외과의사들이 수술을 집도했으나, 시설이 모자라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국외 재해지역 지원사상 처음으로 자프나에 수송기를 띄워 의약품을 전달했다. 황 박사는 “어렵게 들어온 만큼 보람이 크다”며 “전쟁에 오랫동안 시달린 사람들이어서 이들을 안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키리노치(스리랑카)/글·사진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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