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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9 19:01 수정 : 2005.01.09 19:01

비정규노동 문제에 대응하는 정책에서 우리나라 노동조합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다. 임금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비정규노동은 주로 고용의 유연성만을 목표로 하는 유럽의 경우와는 달리 임금비용의 절약을 함께 수반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1997년 이후 비정규노동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임금비용의 절약이 가능한 임금구조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유형으로는 유럽형과 영미형 그리고 동아시아형의 세 가지를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비정규노동과 임금과의 관련에서도 각기 고유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곧, 유럽형에서는 임금이 사회적 직무분류 기준에 따르고 그 결과 기업단위에서 동일한 노동자를 사용하면서 임금비용을 줄일 수 방법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그래서 비정규노동은 고용의 유연성에는 도움이 되나 임금비용의 절약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 영미형에서는 임금이 집단적 기준보다 주로 개인의 성과에 따르고, 임금 교섭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개별 노동자가 직접 사용자에 대해서 수행하며, 이 과정에서 고용도 함께 교섭한다. 노동자의 임금비용은 매년 이 개별 협상의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유동적이며 따라서 사실상 정규노동과 비정규노동 간의 구별이 거의 없다. 모든 노동자가 임금과 고용 모두에서 완전한 유연성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주로 해당하는 동아시아형은 이들 두 유형의 중간쯤에 해당하는데 여기에서는 노동자 가운데 조직된 일부만이 기업단위의 단체교섭에 의존하여 임금을 결정한다. 이때 임금은 기업단위의 연공에 의해서 주로 결정된다.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는 소위 비정규노동으로 개별교섭에 의존한다. 기업을 벗어나면 연공의 유효성이 사라지므로 기업단위의 정규고용 여부는 그대로 동일한 노동자의 임금비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최근 한진중공업에서 일어난 비정규노동자의 죽음은 바로 이런 사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노동이 임금비용의 절약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비정규노동과 임금비용 절감과의 관련에서 유럽형은 가장 낮고 영미형이 가장 높으며 동아시아형이 그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셈인데, 이것이 차례대로 임금형태에서 사회적 기준의 직무급, 개별성과의 연봉제, 그리고 기업별 연공임금과 결합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997년 이전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기업별 연공임금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비정규노동의 온상은 이미 그 속에 마련되어 있었던 셈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임금구조는 다시 급격하게 영미형의 개별성과 연봉제로 이행하고 있는데, 이는 비정규노동이 부쩍 증가한 최근 경향과 결코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노동부의 조사결과, 97년 연봉제 적용 사업장은 1.8%에 불과했으나 2003년에는 이미 23%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들이 비정규노동에 대한 대응정책에서 임금정책의 중요성에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신준/동아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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