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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2 20:27 수정 : 2005.01.02 20:27

지난 한 해 금융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달러화 가치의 하락, 곧 달러화 약세 문제였다. 세계 경제가 미국을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하게 연결된 오늘날, 달러화와 여타 통화 사이의 교환비율, 곧 환율은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가장 중요한 경제변수이기도 하다. 2005년도의 경제를 전망하는 데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으로 ‘달러화 가치하락’을 꼽은 경제학자들이 가장 많았다는 <비즈니스 위크>의 최근 기사 역시 환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이 40%에 달하는 대표적인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으로서는 달러화의 약세(=원화의 강세), 곧 원/달러 환율의 지속적 하락은 수출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각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의 달러화 약세가 1970년대 초반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작동해 왔던 ‘포스트 브레튼우즈 체제’에서의 경기규칙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체제의 핵심은 ‘동아시아 통화의 달러화 연동제’로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국통화 가치를 사실상 달러화와 연동시킴으로써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확보된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는 미 재무성증권 등 달러화 자산의 매입에 사용함으로써 미국인들로 하여금 소득을 뛰어넘는 지출을 가능하게 해주는 환율 묵계가 작동해 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과잉저축, 미국에 대해서는 과잉지출 또는 경상수지 적자 확대라는 형태로 ‘글로벌 불균형’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는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인 <블룸버그 통신>의 윌리엄 페섹 주니어는 최근의 달러화 약세, 즉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강세가 잘못된 체질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동안 동아시아 국가들이 환율 관리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채 경제체질의 근본적인 개선을 통한 대내적 성장노력에는 게을리했지만, 이제는 통화강세를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내수기반 강화와 더불어 경제 주체들의 실질적인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투자회사 모건 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디 시에는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들과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그 해법과 관련해서는 상이한 처방을 제시한다. 그는 동아시아 통화들의 절상 대신 금리 및 세율 인상을 통해 미국인들의 과도했던 지출을 보다 직접적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세계경제 최대의 뇌관인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가 강한 달러화 그 자체보다는 연방준비제도의 저금리 기조 및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큰 폭의 달러화 약세는 미국 자체의 체질개선보다는 ‘나머지 세계경제의 궁핍화’로 이어지기가 쉽다. 동아시아 통화의 절상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경쟁력 약화 및 주력 기업들의 생산기지 해외이전, 그리고 달러화 보유자산의 가치하락 등을 통해 경제성장의 동력 및 부를 동아시아로부터 미국으로 이전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그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가계부문의 막대한 채무로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특히 큰 폭의 원화절상이 저성장·저금리·저인플레라는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러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몇 가지 대안도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통화당국이 환차익을 노리는 거대 투기세력에 맞서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야만 한다는 충고가 특히 눈에 띈다.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찬미해야 할 월가의 대표적인 이코노미스트가 정책당국의 개입 필요성을 역설하고 급격한 환율조정 유해론을 제기하는 것이 그리 익숙한 풍경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앤디 시에의 주장은, 정치적인 역학관계와 판돈의 규모 그리고 시장 참여자들 간의 게임에 의해 좌우되는 가장 ‘비경제적인’ 경제변수가 바로 환율이라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경우,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밖에 없는 결론일지도 모른다.

박종현/국회도서관 금융담당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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