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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6 19:28 수정 : 2005.01.16 19:28

■ 의료전문기자 공동진료기

천막살이로 감기까지 달고 지내

15일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시내의 룬바타와 사마하니 난민촌 진료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의료지원단이 진료를 시작하자마자 환자들이 길게 줄을 섰다. 각각의 진료소에서 이날만 200명 가까운 주민들이 진료를 받았다. 점심 시간 전후로는 어김없이 열대 소낙비가 쏟아졌지만 환자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지진해일 피해를 당한 지 3주가 넘어서인지 심각한 외상을 입은 환자들의 경우 주변 병·의원이나 다른 진료소에서 대부분 1차 치료가 끝난 상황이었다. 그러나 찢어지거나 찔려서 1차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 사후 관리를 받지 못해 제대로 낫지 않거나 오히려 상처가 덧나 있었다.

룬바타 난민촌에서는 아예 수술복으로 갈아 입고 진료에 나선 김철수 의료지원단장(일산병원 산부인과 과장)과 이성운 일산병원 간호사가 수술복이 젖을 정도로 흐르는 땀에도 불구하고 곪은 조직의 제거, 상처 소독, 벌어진 상처를 다시 꿰매는 작은 수술들을 도맡아서 했다.

진료소마다 200여명 찾아
곪은 곳 떼내고 상처소독
의료진 “매일 오라” 신신당부

7살인 쌈술바하리는 지진해일 당시 담장에 부딪쳐 오른쪽 다리의 무릎 아래 부분이 15㎝정도 찢어지고 깊게 파여 살점이 한 주먹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그는 이전에 치료를 받았지만 거즈를 열어 보니 상처는 주변 정상 조직까지 침범하면서 곪아 가고 있었다. 쌈술바하리는 이번 지진해일로 부모들이 모두 숨지는 바람에 친척이 데려와 의료진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김 단장이 곪은 조직을 제거하고 소독한 뒤 부분적으로 봉합했지만 사후 관리는 계속 필요했다. 다음 날은 물론 날마다 진료소를 찾도록 신신당부하며 돌려 보냈다.

하싸누딘(17) 역시 지진해일 피해 때 막대기에 찔려 허벅지에 상처를 입은 뒤 1차 치료를 받았지만 거즈를 열어 보니 곪아 있었다. 역시 죽은 조직을 제거했으며 소독한 뒤 다음에도 계속 방문할 것을 당부했다. 이 밖에도 머리가 찢어지거나 발가락 및 발바닥 부위가 찢어진 사람들 가운데 상처 부위에 감염이 생겨 상처가 심하게 덧나 있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30~40명이나 됐다.


김 단장은 “지진해일로 외상을 입은 난민들의 경우 연속적인 치료 및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부분 상처가 다시 곪았고 꿰맨 곳도 다시 터질 정도로 감염이 심각했다”고 말했다.

▲ 16일 오후 인도네시아 아체주 동부해안 시글리 근처에 있는 난민촌에서 해일 당시 많은 양의 바닷물을 마셔 호흡곤란을 겪고 있는 한 주민이 힘겨운 표정으로 누워 있다. 시글리(인도네시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날 사마하니 난민촌에서 진료를 했던 조경희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과장도 “한 환자는 어깨에 생긴 상처에 간단한 치료를 받은 흔적이 있었지만 사후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2차 감염이 생겨 위팔 전체가 부어 있기도 했다”며 “기온이 높을 뿐더러 세균 감염의 가능성이 높은 주거 환경이므로 지속적인 소독 등 추후 외상 관리는 꼭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의료 지원 시스템이 유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반다아체가 비록 열대지방이었지만 난민들이 천막 생활을 하다보니 기침, 가래, 콧물 등 감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노인까지 가리지 않고 대부분 기침 등을 달고 있다고 호소했다. 통역을 담당한 인도네시아 및 외국인 자원봉사자도 하루 정도 난민들의 증상을 의료진에게 전달하다보니 웬만큼 환자들의 증상을 듣고 감기로 진단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기자를 포함한 나머지 의료진들이 이런 환자들을 주로 진료했으며, 한국에서 가져온 진통제, 가래제거제, 기침약 등을 처방했다. 난민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임시 거처라도 마련돼 이런 고통이라도 덜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반다아체(인도네시아)/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착한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 됐으면”

통역 자원봉사자 장용준씨

“환자가 말하는 ‘바뚝’은 기침이고, ‘필렉’은 콧물, ‘가딸’은 가렵다는 말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 의료진이 반다아체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설령 도착했다 하더라도 인도네시아 난민들을 제대로 진료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 주인공은 의료진과 난민들 간 통역을 해주기 위해 자원 봉사에 나선 장용준(33·사진)씨다. 그가 있었기에 메단에서 반다아체까지 버스로 12시간 걸려 들어오는 길도 마음 놓고 올 수 있었다. 사실 아체 지역에서는 반군과 정부군의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특히 육로는 위험할 수 있다는 언론 보도 등이 있어 의료진은 내심 불안했다.

난민촌 진료에서도 그는 난민들과 의료진 사이의 통역을 맡아 진료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왔다. 통역을 하는 바쁜 와중에도 그는 어린 아이들을 달래고, 의료진에게 아이들을 인사시키기도 했으며, 주민들에게 한국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는 3월 신학 전공의 국내 대학원 입학이 확정된 그가 의료지원단에 합류한 이유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각별한 애정 때문이다. 그는 1997년부터 자카르타대학 인도네시아어교육과에 재학하는 등 6년6개월 동안 자카르타에 머물러 이곳 주민들의 순박한 마음이 잊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주민들은 매우 순박하고 착하며 정도 많은데, 이런 대재앙이 나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가족과 살 공간을 모두 잃은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급하게 통역을 구한다는 소식에 한숨에 달려온 그는 다음달 20일까지 40일 동안이나 이곳에서 봉사 활동을 할 예정이다. 반다아체(인도네시아)/김양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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