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자오쯔양(86)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1989년 5월19일 새벽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젊은이들을 찾아가 확성기를 들고 연설하고 있다. 그 오른쪽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당시 총서기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있던 원자바오 현 중국 총리다. AFP 자료사진/연합 자오쯔양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사망 전에 여러 차례 그의 ‘사망설’이 보도됐다. 권좌에서 밀려난 지 15년이 넘은 그에 대해 여전히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까닭은 그가 중국 정치개혁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1989년 중국공산당이 천안문 학생 시위대를 강경진압하기로 결정했음에도 그가 시위 현장을 방문한 것은 정치개혁에 대한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너무 늦게…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아무 상관없어요, 여러분 같은 젊은이들이 큰일이지…여러분들의 요구는 언젠간 받아들여질 겁니다”라고 발언해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자료 사진을 보면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후보서기 겸 중앙판공청 주임(총서기의 비서실장격)이던 원자바오 총리는 자오 총서기의 왼쪽 뒤편에서 굳은 얼굴로 그를 지켜보고 있다. 그해 6월4일 시위가 유혈진압당한 뒤 자오는 모든 당 직책을 박탈당하고 가택연금당했다. “내가 너무 늦게 왔다”는 그의 말은 고별사가 됐다. 가정을 중시했던 자오는 4남1녀의 자녀들과 함께 원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걸 즐겼다. 이 자리에서 자오는 정치 등 시사문제에 관한 자식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이런 습관 때문에 그는 젊은이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고, 천안문의 학생들에게 자신이 “너무 늦게 갔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새해 첫날 저녁, 중국 최고위 지도자들이 모여 사는 중난하이에서는 새해맞이 징쥐(경극, 중국 전통 오페라) 공연 관람을 겸한 만찬이 열렸다.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는 이 화려한 만찬에 참석하지 않고 살그머니 빠져나와 쓰촨성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날 밤 원 총리는 쓰촨성 퉁촨 탄광에서 지역 지도자와 안전전문가들이 참가한 탄광안전 강화회의를 열었다. 퉁촨 탄광은 지난해 11월28일 광부 166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가스폭발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다음날인 2일 원자바오는 탄광사고 희생자 유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울먹이는 아이의 어깨를 껴안으며 “내가 너무 늦게 왔다”고 말했다. 이 보도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천안문 앞에서 남긴 자오의 ‘고별사’를 떠올렸다고 홍콩 <동방일보>가 11일 전했다. 원 총리는 사스가 창궐할 때 일선 병원을 찾았고 에이즈환자 수용시설을 방문해 환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계산된 행동’이라 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행동이 열 번 스무 번 쌓이면 거기엔 나름의 진정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개혁개방 이후 지난 25년 동안 초고속 성장을 거듭한 중국 사회는 심각한 빈부 격차, 환경오염, 산업재해, 노사갈등 등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의 문제들로 곪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공산당의 통치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까닭은 늘 가장 아픈 곳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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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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