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23 19:39
수정 : 2005.01.23 19:39
최근 경기침체를 동반한 기업들의 투자 부진 현상을 놓고 ‘자본 파업’이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어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투자에는 파업이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업들은 끊임없이 수익을 추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투자가 부진하다면 그것은 일정한 투자 수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수출 호조에 따른 설비투자 압력 증대와 저금리, 풍부한 유동성 등을 감안할 때 투자 부진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따라서 기업이 투자를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자본 ‘파업’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투자부진 원인에 대한 더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지만, 파업 지도부격인 전경련이나 경총같은 자본가 단체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덧붙인다. 즉 고배당 등 주주가치 극대화를 요구하는 주주들, 특히 외국자본의 압력과 이들의 인수합병 위협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장기적인 설비투자 등을 꺼린다는 것이다. 또 재벌 대기업에 대한 규제는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다 여전히 경직적인 노동시장과 이로 인한 과도한 임금 지급이 초래하는 높은 생산비용 부담도 빼뜨리지 않는다.
외국 투기자본까지 가세한 주주들의 과도한 배당 요구는 경영자들의 단기실적주의와 함께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라고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투기적 목적으로 주식을 매입한 주주들을 제외하면, 주주들이 기업의 기술 혁신투자나 시설투자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자본 파업 역시 기업 내 주주들의 주권을 기반으로 한다. 이 주권은 사회 내 주주주권, 이른바 자본의 구조적 힘으로 연결된다. 특히 글로벌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주주자본주의 아래서 이 구조적 힘은 한 사회를 넘어서 초국적인 수준으로 확대된다. 일국적이거나 초국적인 자본의 구조적 힘은 자본의 이해에 반하는 정부 정책 등 개혁을 저지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자산소유 계급의 능력이다.
이 능력은 자본 파업, 즉 투자거부나 투자 연기, 그리고 자본의 국외도피 등으로 구체화한다. 이런 수단이 동원되면 경제 여건은 악화되고 개혁 정부의 인기는 추락하여 더 이상의 개혁을 추진할 수 없게 된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여러 개혁 조치들에 저항해왔던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도 외견상으로는 이러한 자본파업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파업은 고용 기피와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 것은 현재의 자본 파업에 관한 기업 내 결정들이 주주들의 주권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외환금융위기 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주주가치 경영’을 표방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했음에도 재벌 대기업들의 투자에 관한 의사결정은 여전히 소수 지배주주가 중심이 된 기업경영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글로벌 금융자본의 주주가치 극대화 압력이라든가 경영권 보호를 위해 기업의 이윤원천이 되는 투자를 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결국 소수 재벌의 경영권과 재벌 체제를 지키기 위한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송원근/진주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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