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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1 08:10 수정 : 2019.11.21 11:0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 도중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미 한반도 전문가 5명 긴급설문]
‘분담금 인상 압박’ 비판 한목소리
“미국 요구 과도해 한미 동맹 해쳐”
“산정공식 양해도 없이 숫자 제시”
“현행 협정 연장 뒤 점진적 인상을”
“동맹 가치는 달러로 측정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 도중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5배(달러 기준. 원화 기준으로는 6배) 요구는 터무니없다.” “동맹을 마피아 비슷한 거래관계로만 본다.” “동맹의 가치는 달러로 측정되는 게 아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19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에 한목소리로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18~19일 서울에서 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해 열린 3차 회의는 미국 대표단의 갑작스러운 중단 선언으로 결렬됐다. 같은 기간 <한겨레>가 워싱턴의 주요 싱크탱크 인사 5명에게 긴급하게 물어보니, 이들 기관의 노선 성향에 관계없이 ‘미국의 요구가 과도하며, 이는 한-미 동맹을 해친다’는 의견으로 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고려할 때 방위비 분담금 인상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트럼프 정부가 올해 한국이 부담하는 액수의 5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은 이번에 50억달러(약 5조8천억원) 가까이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이미 능력과 자체 방위비, 분담금에서 미국의 최상 동맹들 가운데 하나”라며 “주둔국에 방위비 분담금 5배를 요구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분담금 산정을 위한) 공식(포뮬러)에 대한 상호 양해도 없이 금액 숫자를 제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행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은 △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 임금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를 한국의 분담 항목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미국은 이번에 △군무원 및 가족 지원 비용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 비용 △역외 훈련 비용 등 새로운 항목을 들이대며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요구는 동맹을 ‘돈거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을 반영하며, 이는 수십년간 지속된 미국 전략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비판 수위가 훨씬 높았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한-미 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긴장이 이어지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무시에서 시작된다”며 “그는 동맹을 부동산 거래처럼 본다. 모든 게 마피아 같은 거래관계다”라고 꼬집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동맹은 거래관계가 아니라 공유된 가치와 목표에 기반하는 것”이라며 “동맹의 가치는 달러와 센트로 측정되지 않는다. 한국전쟁에서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의 지속적인 모토는 ‘같이 갑시다’이지, ‘돈 많이 받으면 같이 간다’가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공유된 이익·가치·전략에 기반한 동맹 구조를 가지려 하는 것이냐, 아니면 주둔국의 자금 수준에만 기반하는 거래적 동맹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냐는 게 근본적 질문”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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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동맹 인식은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매닝 선임연구원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탈퇴할 수 있다고 말한 점을 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는 두번째 임기 때 ‘해외주둔 미군 귀환’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짚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방위비 협상이 막히면 트럼프는 ‘100% 보상 못 받으면 주한미군을 감축할 수 있다’는 대선 때 발언을 실행할 수도 있다”며 “북한의 위협은 줄지 않았고, 미군도 줄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점진적 인상’이 해법이라며 구체적 대안을 제안했다. 엄 선임연구원은 “분담 공식을 급격히 바꾸는 문제를 한두달 안에 해결할 수 없다”며 “우선 현행 1년짜리 협정을 연장하고, 양쪽이 수용할 수 있는 새 공식을 결정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지원 항목을 새로 만들려 한다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부터 개정해야 공정하고 동등한 분담금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현재 요구는 주둔군지위협정 제5조에 규정된 ‘주한미군의 유지에 수반되는 경비 분담’을 뛰어넘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매닝 선임연구원은 “한·미 상황은 12개월마다 중대하게 바뀌는 게 아니다. 해마다 비용 분담을 재협상하는 건 난센스”라며 “3년이나 5년짜리 합의여야 한다. 한국은 1년에 몇 %씩 인상하겠다는 등의 공식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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