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5 20:31
수정 : 2019.11.26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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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구의회 선거 개표를 마친 25일(현지시각) 오전, 침사추이 카오룬공원 수영장에 마련된 개표 소에서 친중 성향의 후보들을 제치고 당선된 범민주파 후보 천자랑(39·오른쪽)이 선거사무소 동료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다. 홍콩/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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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운동 6개월, 구의회 392석 압승
친중파 60석 참패…투표율 71% 최고
람 행정장관 “민심 반영” 자세 낮춰
시민들 “우리 목소리 분명히 내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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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구의회 선거 개표를 마친 25일(현지시각) 오전, 침사추이 카오룬공원 수영장에 마련된 개표 소에서 친중 성향의 후보들을 제치고 당선된 범민주파 후보 천자랑(39·오른쪽)이 선거사무소 동료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다. 홍콩/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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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승리였다. 모두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24일 실시된 홍콩 지방선거(구의회)에서 70%가 넘는 기록적 투표율 속에 범민주 진영이 80%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다. 6개월을 끌어온 홍콩 시민의 저항운동이 사상 초유의 ‘선거혁명’을 만들어냈다.
25일 낮 카오룽반도 침사추이 근처 채텀로드 부근은 점심시간을 맞아 삼삼오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로 넘쳐났다. 아니스 테(27)는 ‘어제 투표했느냐’는 질문에 일행 3명과 함께 한목소리로 “당연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 결과에 대한 생각을 묻자 “행복하고 기쁘다”고 짧게 말했다. 곁에 있던 마스크를 쓴 레이 찬(29)도 “너무 오랫동안 정부가 시민을 무시했다. 선거를 통해 우리 목소리를 분명하게 낸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유권자 294만여명의 참여 열기 속에 역대 모든 선거를 통틀어 최고치인 71.23%의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선거는 홍콩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단 한차례도 지방의회의 압도적 다수파 지위를 놓치지 않았던 친중 ‘건제파’는 기존 327석이던 의석이 60석으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친중파 최대 정당인 민건련(민주건항협진연맹)은 기존 119석 가운데 21석을 지키는 데 그쳤다. 궤멸적 수준의 참패다.
반면 만년 소수파였던 범민주 진영은 기존 118석이던 의석을 전체 452석 가운데 86.7%에 해당하는 392석으로 폭발적으로 늘렸다. 특히 지난 선거에서 각각 43석과 10석에 그쳤던 범민주 진영의 민주당과 공민당은 91석과 32석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홍콩이 ‘선거 혁명’의 열기에 휩싸인 이날 일주일째 막혔던 홍콩지하철 동철선 훙홈역이 문을 열고 운행을 재개했다. 하지만 경찰이 철통같이 봉쇄하고 있는 홍콩이공대로 통하는 A·D 출구는 육중한 철문이 내려진 채 통행이 불가능했다. 역무원은 “시설은 개방해도 문제없다. 경찰 작전 때문에 폐쇄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명의 시위대가 9일째 고립된 이공대로 가는 길목은 여전히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차단된 상태였다. 경찰이 접근을 허용한 구역 끝까지 다가서자, 저만치 이공대 본관이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짙은 주황색 점퍼 차림의 40대 남성은, 모처럼 휴일이라 짬을 내 학교 상황을 직접 보고 싶어 왔다면서 “1주일째 폭력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 왜 아직도 경찰이 막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거 참패로 다시 벼랑 끝에 선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민심을 겸허히 듣고 반영할 것”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지난 6개월을 끌어온 반송중(범죄인의 중국 송환 반대) 시위에 대한 민심의 판정이 내려진 만큼 저항운동에 새로운 동력이 생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위대 으뜸 요구조건인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조사위원회 구성뿐 아니라 행정장관 직선제를 비롯해 홍콩 문제에 대한 중국의 노골적 개입에도 일정한 브레이크 노릇을 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반송중 시위 6개월의 결산 격인 이번 선거 결과는 중국 정부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새로운 시험대에 올려놨다. 압박과 강경책만으로 홍콩 민심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일국양제를 앞세워 홍콩, 마카오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대만 통일까지 염두에 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도 일정한 상처를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중국 당국은 쉽게 자세를 바꿀 기세는 아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홍콩 선거 결과를 전하며, “범민주파의 압도적 승리는 아니다. 선거에서도 이겼으니 이제 폭력을 멈추라”고 압박했다. 홍콩 정치분석가 윌리 람도 <아에프페>(AFP) 통신에 “시위대는 이번 선거 승리를 시민들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더 강고한 싸움을 이어갈 것이며, 베이징도 선거 패배에도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시위대의 좌절감은 한층 더 깊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범민주파의 압도적인 승리 이후 홍콩 시위가 더 격화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 홍콩 시민들은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않았다. 지난 6개월 싸움을 통해 얻은 교훈 때문이다. 이공대 앞에서 만난 40대 남성은 선거 결과를 묻자 “딱 5분 행복했다”고 했다. 그는 “벌써 6개월째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할 정도로 우리는 순진하지 않다”고 말했다. 채텀로드에서 만난 20대 직장인 아니스 테도 “정부가 곧바로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며 “선거에서 이긴 건 좋지만, 그것만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이제 또 다 같이 필요한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30분께 이공대 들머리 과학박물관 앞으로 수백명이 모여들었다. 새로 구의원에 당선된 수십명이 맨 앞에서 섰다. 췬문 지역에서 승리한 마이클 모 당선자는 <홍콩방송>(RTHK)에 “당선되면 맨 먼저 이공대로 가 아이들을 구하라는 게 유권자들의 빗발치는 요구였다”고 말했다. 선거는 끝났다. 저항은 계속된다.
홍콩/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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