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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4 15:50 수정 : 2005.03.04 15:50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

산케이계열 ‘정론’에 기고 파문…내용발췌 수록

자유시민연대 대표인 한승조(75) 고려대 명예교수가 일본의 극우잡지 기고를 통해 일본의 식민지배를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 상당한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독도 문제 등으로 한국의 대일감정이 매우 악화한 가운데 한국의 지식인이 역사왜곡을 일삼는 일본 우파들과 마찬가지로 일제 식민지배 정당화에 앞장서 관련 단체 등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한 명예교수는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이 발행하는 월간지 <정론> 4월호에 기고한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합병을 재평가하자’라는 글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는 오히려 대단히 다행스럽고, 원망할 게 아니라 오히려 축복해야 하는 것이며, 일본인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큰 이유로 일본 식민지배로 인해 러시아에 합병당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당시의 국제정세와 열강과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다면 한국이 러시아에 점거·병합당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다행”이라며 “러시아에 병합됐으면 시베리아 강제이주와 탄압 등으로 수많은(1천만명 이상?) 사람들이 학살됐을 수도 있다”고 강변했다. 그는 3·1 독립운동과 관련해서도 “경찰과 헌병에 잡혀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명예교수는 이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은 것이 불행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한·일 양국의 인종적 또는 문화적 뿌리가 같다는 점”이라며 “이 때문에 한국의 민족문화가 일제 식민통치 기간을 거치며 더 성장·발전·강화됐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일제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성장·발전 의욕을 크게 자극해 한국인의 문명화에 크게 공헌했다”며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일본 우파를 능가하는 주장을 폈다.

그는 특히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수준 이하의 좌파적 심성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로 꼽은 뒤, 사죄와 배상 요구는 “일본을 나락에 빠뜨리려고 하다가 오히려 먼저 떨어지는 사악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해 피해자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의 큰 반발이 예상된다. 그는 “전쟁 중에 군인들이 여성을 성적 위안물로 이용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며, 그것도 일시적이고 예외적 현상이었다”며 “그렇게 많은 수가 아니었는데도 그런 치욕을 받았다는 노파를 데려나와 과장된 사실을 내세우면서 몇번이나 배상금을 요구하는 게 고상한 민족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

한 명예교수는 “한국의 좌파세력이 적대시해 싸우는 상대는 한국 사회의 이른바 기득권층인 보수세력이며, 이들은 대부분 일제 치하에서 항일독립운동보다는 크든작든 일본에 협력한 자들이었다”며 “이들을 모두 친일파로 추궁해 정치적으로 무능화시키고 좌파세력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도쿄/<한겨레> 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한승조 (75) 명예교수가 극우 세력의 ‘확성기’인 <산케이신문>이 내는 월간지 <정론> 4월호에 실은 글은 이른바 우리 사회의 보수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천박한 역사인식을 갖고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해왔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비슷한 논리를 펴온 친일 인사들이 적지 않아, 이들의 ‘악성 변종’ 쯤으로 여기고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인 지식인이란 사람이 왜곡된 역사를 갈수록 당당하게 외치는 일본 우파의 더 없이 훌륭한 지원군 구실을 자원하는 것은 씁쓸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그의 생각을 관통하는 논리는 이렇다. 일제 식민지배는 축복할 만한 일이다. 따라서 친일파 청산 운운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친일파 청산은 역사왜곡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가 친일 청산에 열을 올리는 것은 공산주의 사상을 이어받은 좌파이기 때문이다. 일제와 가장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은 공산주의 집단이다. 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 제정은 좌파의 장기집권 음모다.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되도록 글의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 싣는다.

그의 논리는 처음부터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작업이 좌파정권의 영구집권 음모에서 비롯했다는 망상에서 출발했다. 그는 한국사회에는 친일행위를 둘러싼 네가지 엇갈린 견해가 존재한다며, 자신을 가장 ‘중증인’ 친일 미화 인사에 포함시켰다.

“이른바 ‘반민족행위’를 둘러싼 네가지 견해가 있다.
첫번째, 친일협력행위를 반민족행위로서 엄중하게 단죄하려고 하는 공산주의자의 견해다.
두번째는 기본적으로 견해는 깥지만 친일행위와 처벌대상자의 범위를 다소 좁히고 완화하려는 견해다. 적극적 좌파의 견해다.
세번째는 반민족행위이기는 하나, 일본의 강압적 분위기에서 불가피한 행위였으므로, 어쩔 수 없는 친일행위에 대한 처벌은 도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제 식민통치가 끝나고 오랜 세월지 지났기 때문에 진상규명과 사후처리가 곤란하다는 견해다.
마지막으로 일제통치하의 친일행위는 당시의 상황에서 반드시 반민족행위라고 할 수는 없으며, 한국인에게 나쁜 것을 한 것만이 아니라 유익한 면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에 이르러 청산 운운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다.

원래 일본제국주의에 대해 비타협적 투쟁에서 공산주의 집단을 능가할 정치세력은 없었다. 국가 가운데서도 과거청산을 강조해 일본을 압박하는 것이 중국과 북한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 일제가 가장 무섭게 탄압한 것도 공산주의 집단이었다. 정말로 불구대천의 관계였기 때문에 종전 뒤 일제청산과 친일파 숙청으로 일관해 적극성을 보인 것이 북한 공산주의자들이다. 그 노선을 추종하는 것인 한국의 ‘386세대’, 그리고 노무현 정권이다.

노 정부가 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을 만든 것은 우선 다음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설 박근혜 한나라당 총재의 정치적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다. 친일파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민주화된 한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를 여론에 묻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음으로 좌파세력의 투쟁상대는 이른바 기득권자로, 보수세력이다. 이들 대부분은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보다는 크든 작든 친일행위를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을 모두 친일파로 추궁해 정치적으로 무력화하고, 그래서 자파세력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법률의 목적이다. 60년이 지난 이 시기에 과거의 친일문제가 다시 나오는 것은 좌파세력이 정치권력의 영속화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일제청산이나 친일파 문제만 나오면 동조, 찬성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입을 다문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적극적 발언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작가 복거일씨다. 필자는 복씨의 주장에 공감, 동조하고 이런 말을 붙이고 싶다. 친일파를 단죄해 민족정기를 떨친 사회는 북한이고, 그렇게 되지 않아 혼탁하고 발전되지 않은 사회가 한국이다라는 공산주의자와 좌파는 일상적으로 주장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결과적으로 한국보다도 크게 성장, 발전해야 하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친일파 청산의 주장은 중대한 역사왜곡이며, 무리한 주장이 된다.

일제 통치하의 친일 협력이 반드시 반민족행위는 아니라는 견해는 상식이 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며, 해방 뒤 한국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입에 올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 악의와 증오로 가득찬 공산주의자와 그 추종자들의 직접적 공격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동아일보> 창시자 김성수, <조선일보> 창시자 방응모를 반민족행위자라고 하는 좌파의 공격으로부터 변호하고 싶어도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할 수 없는 것은 해방 뒤 한국의 반일적 사회분위기 때문이다. 일본 통치 35년 동안 일본에 저항하지 않고 협력하는 등 친일행위를 했다고 질타하거나 규탄한다든지, 죄인 취급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없다.

다음으로 일본이 간단히 멸망할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의 처우개선과 정치적 참여, 또는 자치의 권리를 얻기 위해 조선총독의 정책에 순응해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인물들도 있다. 사람은 신이 아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정세에서 상황판단을 정확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세판단의 착오가 대책 선택의 착오를 낳았고, 잘 해보겠다는 의도가 역으로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 게 있다. 이것처럼 친일파라는 사람들이 한국 국민의 복지와 지위 향상을 위해 일본에 협력했다고 해서 그들을 민족반역자로 공격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친일행위자를 무조건 모두 반민족행위자라고 하는 좌파의 논리는 당시의 역사적, 시대적, 국제정치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역사인식이다.”

그의 강변의 정점은 한국으로선 일본 식민지배를 받은 것이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일본이 아니었으면 러시아에 합병당했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됐다면 천만명 이상이 희생됐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가정 위에서 논리의 비약을 거듭했다.

“한국의 국권상실에 의한 한일합병은 민족적 불행이지만, 불행중 다행이었는가, 아니면 불행 그 자체였는지를 잘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당시 국제정세와 열강과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다면 한국이 당시 러시아에 점거·병합당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에 병합됐으면 시베리아 강제이주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1천만명 이상?)이 학살됐을 수도 있다.

3·1 독립운동 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수는 천만 단위가 아니다. 경찰과 헌병에 잡혀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한반도가 러시아에 의해 점거되지 않고 일본에 합병당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던가. 오히려 근대화가 촉진돼고 잃었던 것에 못지 않게 얻은 것이 더 많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필자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은 것은 불행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한일 양국의 인종적 또는 문화적 뿌리가 같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민족문화가 일제 식민통치 기간을 거치며 더 성장, 발전, 강화됐다. 일제가 학교에서 한글 교육을 폐지하고, 조선어의 연구와 사용을 금지했지만, 그것은 1937년부터다. 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한국어 문학이 큰 손실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자매의 경쟁의식이란 말에서 보듯이 한국인은 일본인에 대해 무조건 지지 않으려는 경쟁의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일제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성장, 발전 의욕을 크게 자극해 한국인의 문명화에 크게 공헌한 것이다. 일본 지배는 결과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조기 성장과 발전을 촉진시키는 자극제의 구실을 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상과 같은 점을 생각하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는 오히려 대단히 다행스럽고, 미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축복해야 하는 것이며, 일본인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는 식민지배에 대한 이런 허황된 인식의 연장선에서 본격적으로 친일파 옹호에 나선다.

“ 공산주의와 좌경사상은 그는 훌륭한 국민과 덜돼 먹은 국민을 분류한 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우리 국민들을 서슴지 않고 후자로 규정한다. 이런 국민성은 좌파사상이 초래한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덜돼 먹은 사람들은 90% 이상이 자신의 책임이더라도 자신의 부족과 잘못을 숨기거나 모르는 척한다거나 해 다른 사람의 책임을 끈질기게 추궁한다. 상대의 약점과 단점을 최대한으로 부풀려 공격과 보상청구에 힘을 쏟게 된다. 한일 관계에서 예를 들어보자. 보수파는 상대적으로 일본에 대해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고, 친일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많다. 그러나 좌파세력은 해를 입었다는 것과 원한에 관한 부분만 찾는다. 한국인에겐 불행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두지 않고 일본에게 떠 넘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본인은 한국인을 마음 속에서 경멸해오고 거리를 두어온 것이다. 이것도 한국인 쪽의 좋지 않은 멘털리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다음으로 훌륭한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역으로 덜돼 먹은 사람은 지난 것에 미련과 후회가 있기 때문에 과거의 일을 처리하는 데 시간과 정력을 낭비한다. 노무현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과거사 진상규명은 과거에 대한 집착과 집념에서 생겨난 좌파세력의 전략적 산물이다.

‘덜돼 먹은 국민’성은 과거사 왜곡 뿐아니라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불태워왔다. 훌륭한 국민, 국가의 특징은 뛰어난 개방성과 포용력, 그리고 세계성이다. 이것은 한국 국민이 모든 나라의 사람들에 대해서 폐쇄적이고 악의에 가득차 속좁은 민주주의 감정에 사로잡힌 덜돼 먹은 국민, 정도가 낮은 국민이라는 말이다.”

그는 덜돼 먹은 국민성의 대표적 사례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꼽았다. 이 대목에서 그는 한국민의 인식은 물론 국제적 보편적 인식과 한참 동떨어진 주장을 거듭해 내용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다.

“수준 이하의 좌파적 심성이 드러난 한 가지로 종군위안부 문제가 있다. 공산주의 세계에서는 성도 혁명의 무기로 활용해라는 말이 있다. 태평양전쟁 때 한국인 여성이 일본군의 성적 위안물로 이용됐다며 사죄와 배상을 계속 요구하는 것은 일본을 나락에 빠뜨려 버리려고 하다가 오히려 먼저 (나락에) 떨어진다는 ‘사악함과 어리석음’의 대표적 사례가 아니겠는가. 전쟁 중에 군인들이 여성을 성적 위안물로 이용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일본이 한국의 여성을 전쟁 중에 그렇게 이용한 것도 전쟁 중의 일시적이고 예외적 현상이었다. 그런 전쟁의 희생자가 수만, 수십만명이었다면 육하원칙에 의해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 정식으로 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수가 아니었는데도 그런 치욕을 받았다는 노파를 데려나와 과장된 사실을 내세우면서 몇번이나 배상금을 요구한다. 이런 것이 고상한 민족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왜 노파들의 행동과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를 열심히 보도하는가. 성의 문제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왜 돈의 문제와 연결지으면서까지 망신주기를 계속하는가. 이런 망신주기로 어떻게 위대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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