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12 19:30
수정 : 2013.12.13 15:08
|
길윤형 도쿄 특파원
|
벌써, 보름이 더 지난 일이다.
요즘 ‘한국 때리기’에 재미가 들린 일본의 <주간 신조>(슈칸신초)의 기사(11월28일 발행호)를 읽다 고민에 빠졌다. 잡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는 미군 위안부 관리자였다”는 기사를 통해 위안부를 무기 삼아 일본을 공격하는 박 대통령의 부친(박정희 대통령)도 사실은 별반 다를 것 없는 인간이었다고 고발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담배를 피울 줄 알았다면, 줄담배를 한갑쯤 피워댔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8년 초 후배 기자와 함께 경기도 평택 안정리 근처에 사는 기지촌 할머니들을 취재하다 국가기록원에서 눈여겨볼 만한 문서를 찾아낸 적이 있다. 1972년 10월유신 직후 설치된 ‘계엄사령부’는 그해 10월28일 각 계엄사령부와 보사부 등에 ‘기지촌 정화 문건’이라는 걸 내려보낸다. 정화의 대상은 다름 아닌 ‘여성들의 신체’였다. 기지촌의 성매매 여성들은 깨끗한 상태에서 미군들에게 ‘제공’되기 위해 일주일에 두번씩 성병 검진을 받았고, 문제가 생길 때는 격리시설에 수용돼 치료를 받았다. 동두천 소요산 어귀에 버려진 성병 관리 시설까지 찾아가 건물 벽면에 붙어 있던 ‘일과표’를 사진으로 찍어 왔던 기억도 난다. ‘아침 7시 기상, 8시 조식, 10시 검진 및 치료, 11시 교육.’ 12시에 점심을 먹고 나면 다시 아침과 똑같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 1969년 7월24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인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다. 이후 미국은 1971년 말까지 인민군의 남침 경로였던 개성-문산-서울 축선에서 ‘인계철선’ 노릇을 해왔던 미 7사단 2만명을 철수시킨다. 박 대통령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남은 미군을 붙들기 위해 기지촌을 정화하고 베트남 파병을 결행했으며, 종국에는 몰래 핵 개발도 했다. 독재자였던 박 대통령은 미국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미국의 의사를 대놓고 거스르는 일은 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 한국에선 일본의 군사적 팽창을 우려하는 시각과 한-미-일 삼각동맹의 틀 안에서 이를 용인해야 한다는 견해가 미묘하게 맞물려 있다. 이를 추진하는 아베 정권의 본질을 놓고 고민하다, 일본 언론인 마쓰타케 노부유키의 <집단적 자위권의 심층>이라는 책을 읽고 비로소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주장을 줄이자면, 아베 총리는 “미국을 믿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불안하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침략에 정해진 정의가 없다”며 사실상 일본의 침략을 부인했다. 그에 대한 미국의 응답은 “야스쿠니신사에 가지 말라”는 경고였다. 아베 총리는 미국과 공통의 ‘역사 인식’을 갖지 못했고, 결국 그래서 미국을 더 믿지 못하는지 모른다. 일본은 미국한테 해마다 막대한 주둔 비용을 지불하고, 오키나와 등에 기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라크 전쟁 때는 ‘후방지원’이라는 명목을 붙여 자위대까지 파견했다. 그러나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 사태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은 일본과 공동보조를 취하는 듯하면서 사실상 이를 용인하고 말았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한발을 뺀 미국을 보며, 아베 정권이 받은 충격을 한국인이 쉽게 헤아리긴 힘들다.
중-일 분쟁이 발생했을 때 미국한테 버림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그래서 미국을 위해선 뭐든 해야 한다는 절박감. 이것이 현재 일본 극우의 행동을 꿰뚫는 핵심 코드는 아닐까.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