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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31 15:16 수정 : 2019.11.01 02:01

31일 새벽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이 불타고 있다. 불은 이날 오후 1시30분께 완전히 꺼졌다. 나하/교도 연합뉴스

31일 새벽 6채 모두 불타…원인 조사중
태평양전쟁 때 미군 포격으로 불타
복원한 뒤 세계문화유산 등록
오키나와 문화 상징하는 건물

31일 새벽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이 불타고 있다. 불은 이날 오후 1시30분께 완전히 꺼졌다. 나하/교도 연합뉴스

태평양전쟁 때 불탔다가 복원된 일본 오키나와 슈리성이 화재로 건물 대부분이 불타버렸다. 슈리성은 오키나와가 1879년 일본에 합병되기 이전 독립국으로 존재했던 류큐왕국의 왕궁이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31일 새벽 2시40분께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을 경비하는 회사가 “연기가 피어오른다”고 소방서에 연락했으며, 불은 11시간가량 계속되다가 오후 1시30분께 완전히 꺼졌다. 이 불로 슈리성 중심 건물인 ‘정전’을 포함해 건물 대부분인 7채가 전소됐다. 연기는 정전 내부에서부터 피어올랐으나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다. 확인된 인명 피해는 없다. 슈리성에서는 지난 27일부터 오는 3일까지 일정으로 류큐왕국 시대의 의식을 재현하는 ‘슈리성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슈리성은 일본 본토와는 다른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류큐왕국이 만든 최대 규모 목조건물이며, 기둥에 용 장식이 들어가는 등 일본 본토와는 건축 양식도 다르다. 슈리성은 오키나와가 일본에 합병된 뒤 정부 건물로 사용돼 왕궁 기능을 상실했고, 이후 일본군 병영이나 학교 등으로 쓰였다. 1920년대부터 보존 노력이 시작됐으나, 태평양전쟁 때는 일본 육군 32군 사령부가 설치됐다.

1945년 5월 미군 해군 함정의 함포 사격으로 슈리성은 불탔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본격적인 지상전이 벌어진 오키나와의 비극을 슈리성도 피해가지 못했다. 당시 오키나와에서는 ‘본토 결전’을 위한 시간 벌기를 위해 일본인, 오키나와인은 물론 강제동원된 조선인과 대만인 등 약 20만명이 허무한 죽음을 당했다. 슈리성은 1992년 정전을 시작으로 전체 건물이 차례로 복원됐다. 2000년 오키나와에 있는 다른 성의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오키나와 지역 언론인 <오키나와 타임스>와 <류큐신문>은 슈리성 전소 소식을 호외를 발행해 긴급 보도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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