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21 20:49
수정 : 2006.07.21 20:49
독자발언대
지난해 8월 말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공식 사망자 수 1069명과 추정액 2000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역사상 네번째라는 이 5등급짜리의 강력한 태풍이 상륙하기 며칠 전, 뉴올리언스 부근에 있는 대부분의 중화학 공장들과 정유회사들은 직원들에게 대피를 권유했다. 그럼에도 이들 회사의 몇몇 관리부 직원들은 태풍이 몰려오는 가운데에서도 공장에 상주하고 있어야 했다. 이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NPR)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당시 태풍으로 공장이 파손되거나 시설들이 유실되지 않도록 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유류탱크나 각종 폐기물 저장 탱크들을 꽉 채워서 홍수 같은 물난리에도 가능하면 떠내려가지 않도록 한다거나, 기계설비들을 지상에 꼭 붙들어매어서 강력한 바람에도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런 일들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카트리나가 상륙했을 때조차도 어두컴컴한 공장의 제어실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재난을 감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비록 많은 공장들이 태풍에 휩쓸렸지만, 다행히 태풍이 계속되고 있던 시점에 특별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환경 전문가들의 우려는 그치지 않았다. 이와 같은 공장의 중요 시설물 이외에도 오폐수와 독극물로 오염된 공장 주변의 토양 침전물들이나 납이나 수은 같은 중금속류, 혹은 방향족탄화수소 피시비(PCB), 다이옥신 같은 독성 유기물질들의 출처가 될 수 있는 수많은 연료탱크, 화학용제, 페인트, 제초제, 살충제 등 재앙이 될 만한 오염원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엄청난 홍수를 동반한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전문가들은 이들 독극물이 실제로 토양으로 스며들었거나 식수원 같은 수원지를 오염시켰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한-미 양국의 주한미군기지 반환협상 결과에 따라 반환이전 대상인 62곳의 미군기지 중 15곳(최근 〈한겨레〉 보도로는 19곳)을 우선 돌려받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경부조차도 반환 기지의 5%에 해당하는 7만여평은 유해환경물질이나 중금속에 오염돼 어떤 용도로도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마당에, 대단히 실망스럽게도 미국 쪽의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이들 지역에 대해 기초적인 항목의 오염제거 작업만이 시행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최소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오염복구 비용도 모두 우리 정부, 곧 국민들이 부담하게 되었다.
여러 매체에서 거론되었던바,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부당성에 대한 비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 전국에 걸쳐 많은 인명, 재산 피해를 일으킨 집중호우가 끝나고, 또 여름 뒤에 어김없이 다가올 태풍이 끝난 자리에 규모는 좀 다르더라도 카트리나 태풍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을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걱정일까?
이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책임지기로 했다면 우리라도 철저히 반환된 미군기지의 오염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처를 다해야 할 것이다. 책임있는 당국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김성재 /미국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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