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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9 17:23 수정 : 2005.03.09 17:23

러시아로의 병합은 최악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일지라도, 일본에 병합되었다는 ‘차악’이 곧 한국에게 축복을 준 ‘선’이 될 수는 없다. 일제가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주장에서 ‘근대화’ 개념은 잘못 적용된 것 같다.

저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현재 대학원 과정에 있는 학생입니다. 교수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습니다만, 이번 교수님의 기고문과 관련하여 저의 생각을 밝히고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무례함보다는 한 학생의 의견으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일제시대에 관한 교수님의 주장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러시아에 병합되었을 경우 러시아의 공산화가 한국에 끼쳤을 영향을 고려해 보면 당시 일본에 병합된 것이 오히려 다행한 일이다. 둘째, 일제 식민지는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 셋째, 일제에 병합되었던 쓰라린 기억은 한민족이 더욱 분발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일제의 한국 병합은 오히려 축복할 만한 일이다. 이에 대하여 저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첫째, 러시아 병합이라는 역사적 ‘가정’을 도입하여 일본 식민지가 된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시킬 수는 없습니다. 러-일 전쟁 이후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매우 약해졌으므로 일본이 아닌 러시아로의 병합 가능성은 사실상 고려의 대상이 되기 어려울 뿐더러, 설령 러시아로의 병합은 최악이라는 교수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일본에 병합되었다는 ‘차악’이 곧 한국에게 축복을 준 ‘선’으로 둔갑될 수는 없습니다. 차악도 어디까지나 악이며, 일제의 주권 침탈은 침탈 그 자체로서 평가돼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일제가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교수님의 주장에서 ‘근대화’의 개념이 잘못 적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학도로서 ‘근대화’의 기본 속성은 정치면에서의 민주화, 경제 쪽의 산업화, 사회 쪽의 합리화, 문화 쪽의 세속화라고 배웠습니다. 정치학자이신 교수님께서 ‘근대화’의 개념을 ‘산업화’와 혼동하셨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일제가 침략 전쟁 수행을 위해 철도를 놓고, 자국의 식량안정을 위한 수탈의 수단으로 산미증산 정책을 수행하고, 병참 기지화 정책을 위해 공장을 건설한 것이 과연 한반도의 민주화를 가속시키고 한국인을 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합리적 사고가 보편적 타당성을 띠는 사회의 건설에 진정 기여했다고 보시는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셋째, 일본의 식민사는 오히려 한민족의 역동성을 배가시킨 축복이었다는 교수님의 주장은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과거의 미화가 아닌가 합니다. 이는 예컨대 불의의 뺑소니 사고로 몸을 다친 사람이 장애를 극복하며 더욱 성장하는 감동적 드라마에서, 현재 그들 삶의 결과가 가해자의 ‘축복’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해자는 그 자체로 형사처벌을 받거나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만일 그가 피해자에게 현재 그렇게 보람 있게 잘 살고 있으니 자신에게 고마워하라고 한다면 누구도 그 말에 동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현재의 과거사 청산작업이 정권 유지를 위한 좌파세력의 책동이라고 하시면서 이런 주장들을 펼치셨지만, 교수님의 반좌파 성향과는 별도로 일본의 한반도 식민정책과 그 역사는 그 자체로서 공과가 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뜩이나 한-일 관계에 잡음이 많은 요즈음,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에서 비롯된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평가할 것과 인정할 것, 청산할 것과 계승할 것이 상식과 역사적 관점에서 균형을 이룬 과거사의 평가가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정환/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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