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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0 17:01 수정 : 2019.07.10 20:04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우리나라에 전문 통번역대학원이 생긴 지 올해 꼭 40년이 된다. 아시아에서는 중국보다 먼저 1979년 9월 한국외대에 동시통역대학원이 생긴 것은 학교 당국의 ‘선견지명’이었다고 봐야 한다. 한국에서 사상 최초의 올림픽 유치 준비를 하면서 우리말을 올림픽 공식언어인 영어와 프랑스어로 옮길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들은 선진 통번역학교를 찾아다니며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을 위해’ 일단 ‘무료’로 한국의 유학생을 받아달라고 호소했고, 1980년 국내에서 1년 수학한 학생들을 유럽으로, 미국으로 보내 전문 교육을 받게 할 수 있었다. 필자도 파리3대학 통번역학교에서 3년이나 무료로 훈련을 받고 돌아올 수 있었다.

통번역이란 의사나 변호사와 달리 ‘보호받지 못하는’ 직종이다. 의사는 의대를 나와 자격증을 따야 의사 노릇을 할 수 있고 변호사도 과거에는 사법시험, 지금은 변호사 시험을 봐야 자격이 생긴다. 하지만 통역사는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해야만 통번역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외국어만 할 줄 알면 누구나 통번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자격 통번역사가 넘쳐나는 것이다.

이후 이화여대 등에서 후발 통번역대학원이 생겨났고, 여러 대학의 학부에서도 유행처럼 통번역 전공과정이 설립되어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다. 어느 대륙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외국어와 통번역에 대한 일반인들의 안목이나 인식은 높지 않고 단기간에 높아지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통번역사를 포함한 모든 이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바로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바둑기계 알파고의 대결에서 알파고가 4 대 1로 압승한 것이었다. 이 세기의 대결이 하필이면 한국에서 벌어져, 우리 언론과 인공지능 업계는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바벨탑의 언어장벽”도 곧 허물어지고 그 어렵고 성가신 외국어 공부를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이 광풍은 지난해까지 이어지다 올해 들어 좀 조용해진 느낌이다. 되돌아보면 놀랍게도 통번역계나 시장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상품 소개나 사용매뉴얼 등을 번역하는 회사들을 제외하고는 다 옛날처럼 인간이 번역을 하고 있고, 호텔의 국제회의장에서도 전문 인간 통역사들이 같은 통역료를 받고 통역을 하고 있다. 통번역대학원도 지원자가 좀 줄기는 했지만 아직 외국어 좀 한다는 인재들이 몰려들어 ‘전문 통번역사’의 꿈을 불태우고 있다. 최근에도 통역사는 구직난이 아니라 구인난을 겪고 있다. 중국에서는 수백 개의 학교에서 통번역 석사과정을 설치하고 있다. 크게 달라진 게 없어 오히려 이상하다.

그렇다. 결국 통번역은 인간이 마지막 손질을 해야 한다. 아무리 첨단의 엑스레이 촬영기가 나와도 최종 판독은 영상의학과 의사가 내리고, 아무리 정교한 수술기계가 나와도 그 기계로 직접 수술하는 것은 외과 의사이듯이 통번역도 결국은 전문 인력의 손을 거쳐야 끝난다. 그래서 지난 5일 한국외대가 주최하는 아태통번역포럼의 주제발표 중 하나의 제목이 ‘인간 번역사가 최종 퇴근자가 되어야 할 이유’였다. 우리에게 더 시급한 것은 인공지능 통번역이 아니라 청와대부터 지방자치단체까지의 통번역을 국가 차원에서 설계하고 운영할 ‘국가 통번역원’의 설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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