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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7 17:23 수정 : 2019.07.18 15:00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대학 서열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상황에서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고교서열화 문제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전국의 2358개 고교가 강력한 서열화 체제에 놓였다. 영재학교(8곳), 과학고(20곳), 자사고(42곳), 외국어고(30곳), 국제고(7곳) 등 107개 고교가 전국 2251개 고등학교 위로 공고한 서열화를 이루었다. 우리 아이들은 고교와 대학에서 이중으로 서열화를 경험하며 자란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아이들도 학부모도 살인적 경쟁 시스템 속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왜, 무엇을 위해, 우리는 그토록 가혹한 현실을 짐짓 모른 척하며 눈을 감고 있는가. 내 아이만 영재학교에 입학하면 되는가. 내 아이만 서울대에 입학하면 괜찮은가. 그리되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보장된다는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가. 서열화의 견고한 벽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먹고 자란다. 그만큼 벽은 높고 단단하다. 학벌 타파를 외치는 21세기 대학 서열화도 힘든데 고교 체제까지 서열화된 세상에서 아이들은 어디에 마음 붙이고 살까.

실제 영재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온갖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이 중학교 3학년 교육과정을 배워야 한다. 6학년이 되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배운다. 초등학교부터 영재고 진학을 위한 사교육비로 1인당 1억6천만원이 소요된다는 추산이 보도됐다. 도를 넘는 선행학습을 요구하고 사교육에 의존해야만 영재학교에 합격할 수 있는 구조라면 더는 침묵하거나 묵과해선 안 된다. 영재학교와 정도 차이는 있겠으나 과학고에 진학하기 위한 과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재학교와 과학고만의 문제겠는가.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 모두 문제다.

그렇다면 고교 서열화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우선 영재학교는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 제14조(영재학교의 입학자격 등) 2항의 ‘중학생 조기입학 자격 부여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반고 진학 뒤, 1학년 과정을 이수한 재학생을 대상으로 선발하여 영재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도록 운영하면 된다. 일반고에서 수학, 과학 교과의 탁월함이 인정되면 교과목 담당교사 추천을 거쳐 선발하면 된다. 다만 평가 요소는 수학, 과학을 중심으로 하되 고교 1년간의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한다. 말하자면 수학, 과학 역량이 우수하면서도 인문 소양과 예술 감수성을 두루 갖춘 인재를 선발함이 바람직하다.

과학고, 외국어고, 국제고는 특목고에 속한다. 이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0조(특수목적고등학교)의 개정과 삭제로 일반고 전환이 가능하다. 자사고는 제91조의 3(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을 개정하거나 삭제하는 방법으로 일반고 전환이 가능하다. 특목고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국무회의 의결로 시행령 개정 혹은 삭제가 가능한 상황임에도 현 정부는 결단을 미루고 있다. 그러는 사이, 대선 공약과 국정 100대 과제였던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문제가 시행령 삭제가 아닌 시·도 교육감의 재지정 평가로 일반고 전환을 시도하는 국면이다. 이로 인해 야기된 사회적 갈등과 소모적 논쟁이 끊이지 않아 피로감만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로드맵이 재지정 평가 논란을 거친 뒤 여론 수렴을 통해 시행령 개정으로 자사고와 특목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설사 의지가 있더라도 집권 후반기에 고교체제 개편 동력이 여전히 유효할지도 미지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반고 수준을 향상할 수 있는 획기적 대책이다. 자사고에 허용했던 학교 운영과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을 일반고에도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반고의 하향 평준화가 아닌 상향 평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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