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 아베 총리가 첫수를 두었다. 그것의 의미는 그동안 재팬 패싱,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 헌법 개정을 위한 외부 위협의 조성, 문재인 정부 교체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일본에서 14년을 산 필자에게도 충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베의 첫수가 무모하리만치 공격적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그 이면에 역사수정주의에 뿌리를 둔 “괘씸하다”(けしからん)는 징벌적 감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자명하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통해 우리는 아베의 첫수가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베가 던진 질문은 의외로 노골적이며 간단하다. 한국에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중·일 사이에서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주로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에 머물 것인지 이탈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 질문에 우리는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 거부로 답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일 지소미아는 한국에 불필요한 제도이며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구조 속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옥죄는 족쇄와도 같기 때문이다. 지소미아는 미국의 강권하에서 체결됐으며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로의 편입을 의미하기 때문에 미-중(일) 대립에 연루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사드 배치가 초래한 중국의 경제 보복을 경험한 바 있다.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국익, 특히 안전보장 전략에 따라서 연장을 거부하면 된다. 물론 한일 지소미아 폐기가 한국의 중국경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중국봉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중국에게 다시금 보낼 뿐이며 한미동맹은 지금처럼 유지하면 된다. 다만 지소미아 폐기에 대한 신중론에도 일리가 있다는 점은 말해둘 필요가 있다. 지소미아 폐기가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 철회를 이끌어내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아베 정부가 바라는 바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에서 이탈하면 일본에는 미-일 동맹만 남게 되고 그로 인해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일련의 안보법제를 완성하기 위해 헌법 9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중론은 미국의 반발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비협력 가능성을 제기한다. 청와대도 이런 신중론에 귀를 기울이며 경제적 대응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내릴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 지소미아를 폐기해야 하는 이유는 과감한 선택을 해도 좋을 만큼 충분한 명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아베 정부는 ‘안보’를 이유로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중재에는 관심이 없고 한국에 내밀 터무니없는 방위비분담금 청구서에만 골몰한다. 특히 미국의 ‘부작위’는 한-일 안보협력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베가 던진 질문에는 지소미아 폐기의 명분 또한 담겨 있는 셈이다. 어차피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한-일 지소미아는 한국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폐기해야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폐기할 명분은 궁색해진다.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자면서 유물이 된 동아시아 냉전을 소생시킬 이유는 없다. 한-일이 안보협력을 통해 대립을 완화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지난 1월 초계기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일 간 안보협력과 대립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대립이 격화된다는 ‘아시아 패러독스’는 ‘안보협력의 심화에도’로 바꾸어도 말이 된다. 한국전쟁 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세 가지 외부 위협에 직면해왔다. 북한 위협, 중국 위협, 그리고 일본 위협이 그것이다. 이 중 일본 위협은 잠재적이었으며 억제돼왔다. 일본이 전후 걸어온 길은 적어도 아베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평화애호국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이번에 아베 정권이 던진 질문에는 꽤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 다시금 일본 위협을 소생시킨 것이다. 여기에도 아베가 던진 질문에 지소미아 폐기로 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왜냐면 |
[왜냐면] 아베가 던진 질문, 지소미아 폐기로 답하다 / 김백주 |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 아베 총리가 첫수를 두었다. 그것의 의미는 그동안 재팬 패싱,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 헌법 개정을 위한 외부 위협의 조성, 문재인 정부 교체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일본에서 14년을 산 필자에게도 충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베의 첫수가 무모하리만치 공격적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그 이면에 역사수정주의에 뿌리를 둔 “괘씸하다”(けしからん)는 징벌적 감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자명하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통해 우리는 아베의 첫수가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베가 던진 질문은 의외로 노골적이며 간단하다. 한국에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중·일 사이에서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주로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에 머물 것인지 이탈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 질문에 우리는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 거부로 답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일 지소미아는 한국에 불필요한 제도이며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구조 속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옥죄는 족쇄와도 같기 때문이다. 지소미아는 미국의 강권하에서 체결됐으며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로의 편입을 의미하기 때문에 미-중(일) 대립에 연루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사드 배치가 초래한 중국의 경제 보복을 경험한 바 있다.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국익, 특히 안전보장 전략에 따라서 연장을 거부하면 된다. 물론 한일 지소미아 폐기가 한국의 중국경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중국봉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중국에게 다시금 보낼 뿐이며 한미동맹은 지금처럼 유지하면 된다. 다만 지소미아 폐기에 대한 신중론에도 일리가 있다는 점은 말해둘 필요가 있다. 지소미아 폐기가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 철회를 이끌어내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아베 정부가 바라는 바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에서 이탈하면 일본에는 미-일 동맹만 남게 되고 그로 인해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일련의 안보법제를 완성하기 위해 헌법 9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중론은 미국의 반발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비협력 가능성을 제기한다. 청와대도 이런 신중론에 귀를 기울이며 경제적 대응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내릴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 지소미아를 폐기해야 하는 이유는 과감한 선택을 해도 좋을 만큼 충분한 명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아베 정부는 ‘안보’를 이유로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중재에는 관심이 없고 한국에 내밀 터무니없는 방위비분담금 청구서에만 골몰한다. 특히 미국의 ‘부작위’는 한-일 안보협력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베가 던진 질문에는 지소미아 폐기의 명분 또한 담겨 있는 셈이다. 어차피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한-일 지소미아는 한국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폐기해야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폐기할 명분은 궁색해진다.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자면서 유물이 된 동아시아 냉전을 소생시킬 이유는 없다. 한-일이 안보협력을 통해 대립을 완화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지난 1월 초계기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일 간 안보협력과 대립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대립이 격화된다는 ‘아시아 패러독스’는 ‘안보협력의 심화에도’로 바꾸어도 말이 된다. 한국전쟁 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세 가지 외부 위협에 직면해왔다. 북한 위협, 중국 위협, 그리고 일본 위협이 그것이다. 이 중 일본 위협은 잠재적이었으며 억제돼왔다. 일본이 전후 걸어온 길은 적어도 아베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평화애호국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이번에 아베 정권이 던진 질문에는 꽤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 다시금 일본 위협을 소생시킨 것이다. 여기에도 아베가 던진 질문에 지소미아 폐기로 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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