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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3 17:56 수정 : 2019.09.23 19:37

심승규
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아파트값이 오를 때마다, 역대 정부는 여지없이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마찬가지로 최근 국토교통부는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주택시장의 구조적 모순은 외면한 채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안정만을 도모했던 역대 정부의 정책들이 오히려 내재적 거품만 더 키워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세계약’이라는 한국 부동산 시장만의 왜곡을 용인한 채, 또 다른 왜곡을 가하는 정책들로 오히려 화를 더 키울까 우려된다.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에는 전세계약이 없다. 세입자들은 사용가치로 결정되는 일정액의 월세를 매달 혹은 몇달치씩 미리 낼 뿐이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세계약하에서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이라는 거액의 돈을 마련하여 집주인에게 전달하고,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재투자함으로써 월세보다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세입자가 거액의 빚을 내어, 상대적으로 더 부유한 집주인의 투자 자금을 지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좀 더 현실적인 예를 생각해보자. 목돈을 마련할 기회가 없었던 ‘흙수저’ 신혼부부는 전세보증금 4억원을 대출받아 서울 근교에 집을 마련한다. 그들의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에게 전달되고, 집 주인은 1억원을 대출받아 교통이 좋은 서울 외곽에 위치한 집에 전세로 입주한다. 서울 외곽의 집 주인은 1억원을 대출받아 전세보증금 6억원을 마련한 뒤, 교육 여건이 좋다는 강남에 위치한 시가 10억원 상당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런 피라미드 구조의 정점에는 ‘금수저’ 자녀들이 있다. 만약 어느 정도 현금과 그에 대한 증여세를 조달할 수 있는 재력가라면, 자녀가 전세보증금을 끼고 시가 10억원 상당의 강남 아파트를 사도록 도울 수 있다.

잇단 신도시 개발 등으로 서울 근교 지역의 전세 수요는 분산되거나 약화된다. 전세보증금으로 4억원을 대출받아 서울 근교에 전셋집을 마련한 흙수저 신혼부부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자비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까지 가입한다. 반면 교육과 교통 등이 잘 발달되고, 더 이상 신규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전세 수요가 몰리는 강남지역의 아파트를 증여받은 금수저 자녀들은 전세가를 올리며 수익을 얻는다. 서울 근교에서는 미분양이 속출할지언정, ‘강남불패’의 신화는 지속된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지원된 자금이 전세계약이라는 왜곡을 통해, 계층적으로는 흙수저에게서 금수저에게로, 지역적으로는 서울 근교에서 강남지역으로 집중된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외면한 일시적 가격 억제는, 규제 대상 아파트의 가격 상승 기대감만 부채질할 뿐이다.

그렇다면 전세계약이라는 우리만의 구조적 모순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선 집주인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전세제도하에서 세입자는 목돈을 빌려주는 사람이고 집주인은 목돈을 빌려가는 사람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못 돌려받을까 봐 반환보증보험을 가입하는 것보다, 돈을 빌려가는 사람이 보증을 제공하는 것이 공정한 순리다. 또한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세입자들이 빚으로 떠안은 전세자금대출을,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을 받아서 갚아주도록 해야 한다. 빚의 명의를 그 빚의 실소유주 명의로 전환하자는 취지다. 시장 유동성이 지나치게 확대될까 우려된다면,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은 전세자금대출 상계로 그 용도와 금액을 제한하면 된다. 이 밖에 월세계약 시 각종 세제혜택 등을 제공하여 월세계약으로의 점진적인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 전세계약을 전부 월세계약으로 전환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여태껏 그래왔듯이 일시적으로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진통제 처방에만 골몰하고, 전세제도라는 근본 원인에 대한 처방을 미룬다면 점점 더 상태가 악화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전세계약이라는 거품 요인을 제거해야 아파트 가격의 하향 안정화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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