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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7 17:48 수정 : 2019.10.08 13:52

윤진현
핀란드 헬싱키대학 수의과대학 연구원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당국이 인천시 강화에 이어 경기도 파주·김포의 모든 사육 돼지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뼈아픈 특단의 조처를 내린 만큼 앞으로 방역 조처에도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때다. 방역은 소독제를 뿌리는 것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소독제의 종류, 농도, 살포 방법이 적절치 않으면 뿌린 뒤에도 바이러스가 소멸 또는 줄지 않을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방역 조처는, 예방 대책에서 가장 기초 단위인 개별 농가에서도 방역이 절차대로 시행됐을 때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농가의 방역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취약 부분을 더욱 면밀히 점검할 수 있는 평가지표가 마련되어야 한다. 독일 프리드리히 뢰플러 연구소의 클라우스 데프너 박사는 과거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큰 홍역을 치른 동유럽과 발틱 국가에서 이 질병이 다시 발병한 농가들을 조사했다. 이 농가들은 모두 방역을 철저히 했다고 자부한 곳이었으나, 실제 그 농가들의 방역 체계를 객관적 평가지표를 기준으로 다시 살펴본 결과, 효과적인 방역 체계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개별 농가에서 방역 상태가 올바로 평가되지 않으면, 감염원 위험 요소에 대한 경각심이나 방역 조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역 체계를 마련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농가의 방역 상태 평가지수를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는 유럽 국가들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벨기에 남부 지역에서는 2018년 9월 야생 돼지에서 처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인되자 그 지역 모든 사육 돼지들을 죽였다. 이후 현재까지 830여마리의 야생 돼지 사체에서 양성반응이 확인됐으나 농가 사육 돼지에서는 벨기에 전 지역을 통틀어 한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체코 즐린 지방도 2017년 6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야생 돼지에서만 발병 사례가 보고된 반면, 사육 돼지는 보고된 것이 없다. 체코는 지난 2월28일 유럽의회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청정국으로 지정됐다. 이 두 나라 예방 대책의 공통점은 객관적 평가를 통해 개별 농장 스스로 효율적 방역 체계를 세우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벨기에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검증된 평가지표를 개발한 대표국이고, 이 평가지표는 현재까지 유럽 국가 대부분을 포함한 전세계 40여 개국 양돈 농가에서 널리 이용된다.

평가지표를 좀더 살펴보면, 이는 농장에서 생기는 감염원의 확산 위험성과, 바깥에서 들어오는 감염원의 전파 위험성을 모두 점검하는 총 120여 문항의 질문지로 구성돼 있다. 이 질문지에는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 요소를 전방위로 담았다. 감염원의 위험성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연관성 비중에 따라 배점이 다르게 책정된다. 이 지표에 따라 농가에서는 방역의 취약 부분과 우선순위로 보완해야 할 부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으므로, 효율적인 방역 체계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핀란드에서는 아직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사례가 없으나, 국토 3분의 1 이상이 발병 국가들과 이웃하고 있고, 양돈 농가에는 발병 국가들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핀란드도 이에 대한 예방 대책으로 농가의 방역 수준을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평가점수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농가의 기대치를 훨씬 밑돌았으나 농가에서는 자체적으로 위험 요소들을 점검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우리도 방역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과학으로 검증된 평가지표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는 곧 개별 농가에서 전방위로 바이러스 유입을 막을 수 있도록 철저한 방역 체계를 세울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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