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30 16:53
수정 : 2019.10.31 07:57
하태규 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상임연구위원·경상대 정치경제학과 강사
조국 사태는 검찰 개혁을 긴급한 사회정치적 의제로 만들었다. 피의사실 공표 등의 금지와 특수부 축소를 성공시키고 공수처 설치 문제를 남겨놓았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전부인가.
검찰, 더 나아가 경찰, 국정원, 법원, 군대 같은 공권력 일반은 한편으로 우리가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무분별한 불법적인 사용의 위험을 소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이나 검찰 자신에 대한 수사와 기소, 재판에서 보듯이 과소한 사용, 불법적인 비사용의 위험에도 놓여 있다. 따라서 검찰과 공권력 일반의 개혁은 그 권력의 공평하고 정당한 사용을 제도상 담보하는 데 있다.
그런데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듯이 공권력이 소수에 집중되는 한 부패하게 되고 자의적이고 무분별하게 사용될 위험에 놓인다. 이에 공권력을 개혁하는 최선의 방안은 그 권력을 특정 집단이 아니라 시민의 것으로 만들어 모두가 공권력의 주인이자 대상이 되게 만드는 데 있다. 이 길은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총회와 추첨의 도입에서 찾을 수 있다.
검찰 기소권을 예로 들면,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소를 결정하는 것은 검사가 아니라 (시민 총회를 대신해서) 무작위 추첨으로 구성되어 다수결로 결정하는 시민배심원이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자의적 기소권 행사를 막을 수 있다. 반드시 기소해야 할 사건은 기소하게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기소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시민배심원들은 법률적으로 심오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수사보고서와 기소제안서 논리에 대해 양심적 판단에 따라 가부를 판단하면 된다. 기소 후 재판이나 기소 전 수사착수·압수수색·체포·구속영장 발부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되면 된다. 시민 총회를 대신해서 추첨으로 선출되는 기소 배심원과 같은 각종 평의회(추첨은 직업·나이·성·지역 등의 인구비례로, 토론은 공론화위처럼 숙고하는 방식)가 핵심이다.
이런 방안에 대해, 과정상 절차의 번거로움이나 사안의 긴급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논리는 기각되어야 한다. 기존 수사, 기소, 재판도 그만큼 많은 절차를 거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기존에는 소수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판단하던 것을 다수 시민이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판단한다는 차이일 뿐이며 긴급한 수사착수, 체포 등은 선집행 후판단의 예외로 반영하면 된다.
하지만 검찰과 공권력의 개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는 검찰 개혁과 더불어 더 큰 문제를 제기했다. 조국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적합했는지와 관련된 문제다. 보수주의 쪽에서는 본인과 가족의 불법행위(아직 확정된 것이 없음에도) 때문에 안 된다는 것으로,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의 원리를 내세웠다. 자유한국당과 다수 언론, 20대 일부와 광화문 촛불이 해당된다. 자유주의 쪽에선 가족과 상관없고 본인의 불법행위, 엄격히 말하면 직무 범죄만 아니면 된다는 관점을 견지했다. 집권세력과 서초동 촛불이 해당한다. 진보주의의 경우에는 법적·절차적 정당성 외에 도덕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관점이다. 그래서 조 전 장관이 사퇴했어야 하고 도덕적 문제는 교육 개혁, 언론 개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와 정의당 등이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쪽은 문제의 핵심이 도덕적 문제를 넘어 계급 문제라는 관점이다. 특목고와 ‘스카이’ 대학을 들어갈 물적, 인적, 네트워크적 능력을 지니고 노동소득이 아니라 자본소득을 통해 부와 위신과 특권을 누리는 집단이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지위도 대를 이어 재생산하고 있는 현상을 계급으로 설명해야 하고, 따라서 계급 폐지 문제가 이번 사태의 핵심 의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현실에서 이런 입장을 제시하는 세력은 안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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