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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30 16:53 수정 : 2019.10.31 07:57

2019 정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장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22일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있은 후 수능전형 확대 여부와 공정한 평가를 둘러싼 교육계 안팎의 논란이 뜨겁다. 11년간 일반고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진학지도를 담당한 교사로서 이 논란에 대한 소견을 써보고자 한다.

수능은 일찍 준비할수록, 여러번 시험을 볼수록 유리하다는 점에서 이미 공정함과 거리가 먼 선발도구다. 학원조차 구경하기 힘든 지역도 있는 반면 다섯살부터 영어, 수학 공부를 시키는 동네도 있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아이들의 학습 성향이나 선행학습 정도가 달라서 학교 수업의 내용과 수준도 같을 수가 없다.

이런 차이는 초중고 내내 누적된다. 2016~2018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수능 100% 전형) 입학생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부산·대구·광주·대전 등 4개 광역시(인구 880만여명)의 3년간 입학생을 전부 합해도 325명에 불과한 반면 강남구(인구 54만여명)에서만 347명이 입학했다. 대도시 간의 차이도 이렇듯 극명하다. 또한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모집 합격자 가운데 ‘엔(N)수생’(여러번 응시하는 수험생) 이상의 점유율은 50%를 웃돈다. 수능전형 확대는 사교육 혜택이 많은 대도시 교육특구의 학생들, 엔수를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고소득층 자녀들이 압도적인 수혜자가 될 것임이 불을 보듯 뻔하다. 모두가 끊임없이 더 나은 학군을 찾는 싸움이 심화될 것이고, 국가가 나서서 재수를 권장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낳을 것이다. 정시 확대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사교육 업체의 주가가 폭등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입학사정관제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바뀐 뒤, 학생부에 교외 수상 실적의 기재를 금지하고 비교과활동의 기재 분량을 줄이는 등 학종은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왔다. 참고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이 의혹을 받는 입시부정은 과도한 교외 스펙 경쟁의 부작용이 있던 입학사정관제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학종에서의 부정입학 사례에 필자 역시 분노와 허탈감을 느끼지만, 이 때문에 학종을 줄이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학종 합격자 가운데는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학생이 더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반고 학생들이 주로 학종으로 진학하는지, 수능전형으로 진학하는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대다수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학종의 문이 훨씬 넓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공정한 룰은 결국 사회적 합의에 의해 규정된다. 그래서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목소리가 많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수능은 소득수준과 교육환경에 따른 기회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다. 그리고 동물의 능력을 나무 오르기로만 평가한다면 물고기한테 공정한 평가가 아닌 것처럼, 재능이 다른 아이들을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한다는 점에서도 수능은 공정하지 않다. 더욱 다양한 배경과 재능을 지닌, 훨씬 더 많은 아이들에게 ‘나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평가라야 공정한 평가라고 말할 수 있다. 수능은 공정하지 않다. 그냥 숫자로 표현되는 결과에 승복하기가 쉬운 시험일 뿐이다. 그래서 다수의 아이들을 열패감에 빠뜨리고, 소수의 성공한 아이들마저 위험한 수준의 우월감에 젖기 쉬운 시험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교육 담론이 공정성에 갇혀 우리 교육이 더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교육은 아이들이 지성과 감성과 인성을 고르게 함양하고 자존감과 행복감,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평가가 10%의 학생을 줄 세우는 기능보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러한 교육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서영권 대구 경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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