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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30 16:53 수정 : 2019.10.31 07:57

이강운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설악산 한계령 능선에 서서 곱게 물든 단풍을 본다. 웅장한 기암절벽과 깊은 계곡, 햇볕에 반짝이는 옥계수는 일찍이 많은 이가 예찬했듯이 실로 아름답다. 봄에는 꽃, 여름엔 계곡, 가을엔 단풍, 겨울에는 하얀 눈! 산을 품으면 차분해지고, 마음을 나누어 너그러워지니 모자람이 없다.

산은 단지 돌덩이나 흙더미가 아닌 생명을 키워내는 공간이며, 산이 키워내는 뭇 생명들은 인간에게 아낌없이 선물을 주고 있다. 산이 베푸는 이자만으로도 충분한데 기어코 산을 쪼개고 콘크리트를 부어 케이블카 철탑을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다. 잠깐 돈 되는 일을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설악산은 빼어난 풍광뿐만 아니라 야생동물과 멸종위기 생물의 중요한 서식처로 애초에 케이블카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산 정상부는 특별한 미소서식지로 종이 빈약하고 약간의 압력만 가해져도 생물종들은 환경 저항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다. 공사가 진행됐다면 산양이나, 그나마 목숨을 연명하던 뭇 생명들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체는 특이한 물질을 갖고 있다. 그들이 멸종됐다면 생명산업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는 물질을 제대로 확인도 못하고 모두 잃을 뻔했다.

비행장 주변 주민들이 엄청난 소음으로 온갖 질병에 노출돼 있는데 어찌 산양이라고, 곤충이라고 일년 내내 스르렁거리는 케이블카 굉음을 견디며 살 수 있을까? 케이블카 주변의 모든 생물을 죽이는 일이다.

단순 개발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논리도 억측이다. 결국은 지역 주민이 아닌 개발업자의 주머니만 불릴 것이고, 설악의 대청봉부터 지리산의 천왕봉까지 전국 국립공원들도 케이블카로 거미줄을 쳤을 것이다. 산의 정기를 흐리고 생물종의 멸종을 강행하면서 흉물스러운 철탑을 세우는 일일 뿐이다.

‘케이블카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 찰나의 유행이나 추상적 수익이 아닌 숲과 자연환경으로 만들어가는 ‘그린 관광’의 경제적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어떤 인공 시설도 없이 옥빛 물과 폭포, 호수만으로 전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얼마나 멋진가?

기후변화를 걱정하고 환경을 통해 가치를 창조해내는 일은 많은 이들이 강조해온 사회적 이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환경적 가치를 축적할 수 있는 장을 미래세대에게 단 한번도 제대로 내어준 적이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풍요로움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지만, 최근 ‘결석시위’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해 기성세대에게 던진 강렬한 메시지를 들어보라. “미래가 없어질 상황에서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공부를 열심히 해 원하는 꿈을 이뤘다고 해도 지구에서 살아갈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어른들을 꾸짖는 아이들의 일침이 준엄하고 아프다. 설악산 케이블카를 둘러싼 쓸데없는 논쟁이 극복되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낭비하는 상황이 하염없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모든 국민이 뜨겁게 사랑하는 설악산은 ‘나의 산’이 아닌 ‘우리의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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