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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5 18:19 수정 : 2019.11.26 14:04

안문석 ㅣ 전북대 정외과 교수·한반도평화연구소장

한-일 관계가 지금만큼이나 갈등적이던 1960년대 초 미국은 바빴다.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와 린든 존슨, 국무장관 딘 러스크, 주한대사 새뮤얼 버거, 주일대사 에드윈 라이샤워 등이 전방위로 나서 한국을 압박했다. 일본과 수교하라는 것이었다. 일본이 식민지배와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한국인들의 주장은 이들에게 잘 보이지 않았다. 주요 동맹국 일본과 한국이 지역 통합을 통한 안정적 동아시아 관리라는 미국의 안보전략에 적극 부응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겐 일본이 주장하는 경제협력 방식의 청구권 문제 해결이 손쉬운 타결 방안이었다. 한-일 역사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뒤로 미뤄졌고, 이들의 바람대로 경제협력 방식으로 협상은 종결되었다. 1965년 6월의 일이다.

이달 초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와 키스 크라크 국무부 경제차관, 제임스 드하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협상대표가 한꺼번에 방한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더니, 곧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길에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까지 내비치면서 지소미아 연장을 압박했다. 이어 방한한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도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했다. 상원은 만장일치로 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국 우리 정부는 종료를 조건부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50여년의 간극이 무색하게 1960년대와 지금이 닮았다. 한-일 관계 정상화 회담의 핵심은 일본의 과거 잘못에 대한 사죄와 배상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여기서 눈을 돌린 채 한국과 일본의 수교에만 관심을 쏟았다. 최근 미국은 문제의 근원인 일본의 수출규제를 덮어둔 채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지소미아 종료만을 문제 삼아왔다. 앞뒤가 바뀌었음을 미국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그럴 만큼 미국의 안보전략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위치는 한국을 훨씬 앞선다. 미국은 1960년대나 마찬가지로 한국보다는 일본을 중시하면서 한국을 2차적 협력 대상으로 삼아 동북아 전략을 펴고 있다. 압박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일본보다는 한국이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대한 압력 강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하고, 호르무즈해협 한국군 파견, 중거리핵전력(INF)조약 폐기에 따른 중거리 탄도미사일 한국 배치 등을 본격 요구할 때를 대비한 장기 포석으로도 의미 있는 압박이 아닐 수 없다.

한·미·일 관계를 깊이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방기(abandonment)와 연루(entrapment)의 불안감을 덜 줄 때는 한-일 관계가 좋았다. 반대로 그 우려가 클 때는 양국 사이가 나빴다. 최근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그 우려를 높인다. 미국,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호주)를 주축으로,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을 그 아래 파트너로 삼는 전략이니 제2선으로 밀려난 국가들은 방기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을 포위하자는 전략이니 제1선의 국가들도 연루에 대한 우려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한-일 갈등의 먼 원인이 되었다 할 수 있겠다. 그 토양 위에서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가 발생했고, 8월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도 내려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되레 압박의 대상이 된 것은 우리다. 억울하다. 많이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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