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2.04 18:09 수정 : 2019.12.05 02:37

전종호
경기도 백마고등학교 교감

약 20년 만에 칼럼을 쓴다. 1999년 <한겨레>에 ‘학교붕괴론’ 기고를 통해 학교의 실상을 알리고 산업사회의 학교 모델에서 탈피해 학교의 질적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엉뚱하게도 공교육 정상화를 내세워 내신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면서 학생들을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내신-수능-논술)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죄책감으로 한동안 교육운동에서 발을 빼고 살았다.

이 글은 조형근 교수의 ‘대학을 떠나며’라는 <한겨레> 칼럼을 보고 나서 쓰게 됐다. 학문의 전당에서 지성인의 자유로운 사유와 고민보다는 실용적 지식생산 사이트로 변질된 대학에서 피곤하게 일하는 교수 노동자의 일상을 읽게 되면서, 문득 지난 20년 동안 우리 중등학교 교직 사회는 어떻게 변했고 우리 교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편차가 있어 일반화하긴 어렵겠지만, 그동안 현장에서 체감한 바로는 10년 전 혁신교육이 도입되고 학생, 현장, 과정, 배움 중심 수업이 강조되면서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이유 없이 돌아다니거나 무조건적으로 교사의 지도를 거부하는 등의 학교 붕괴 현상이 많이 감소됐다. 토론, 토의 등을 통해 학습을 진작하는 기풍도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교사의 삶은 고달프다.

우선 교사는 감정노동자로서의 삶을 감당하고 있다. 교사-학생-학부모의 관계가 변하면서 교사는 가르침의 권위자나 고급 지식의 담지자로서보다는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서비스맨이자, 안내자, 보조자의 구실이 중요시됐다. 학교와 교육기관은 이제 온갖 민원의 장소가 됐다. 수업과 생활교육에서뿐 아니라 급식, 청소, 언어 등에서 학부모의 간섭 또는 민원으로 학교는 하루 종일 몸살을 앓는다. 학교에서 민주주의가 촉진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전문적 영역에서의 수고뿐 아니라 전화 응대와 학부모 면담, 입시 상담과 컨설팅 등의 과정에서 감정노동자로서의 교사의 역할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 됐다.

다음으로 교사들은 기록노동자의 역할을 강요받고 있다. 특히 고등학교 교사의 경우 입시에 관련된 기록의 스트레스가 크다. 고등학교가 대학 입시의 종속적 기능을 수행했을 뿐 독립적인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한 적이 없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이 도입되면서 고등학교 교사는 생활기록부를 채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고 심적 부담도 크다. 교사들은 철학-내용-수업-평가의 교육과정 순환모형에 기초하여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교수평기)의 과정을 염두에 두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으로 교육철학에 대한 고민보다는 생활기록부의 기록을 위해서 교육의 전 과정이 계획되고 추진되는 ‘웃픈’ 경우도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노동 강도는 엄청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 기록의 결과가 공개될 때 학부모와 학생들의 항의와 민원이 빗발칠 뿐 아니라, 외부기관 컨설팅을 받고 온 학부모와 누구보다 학생의 학습과정을 잘 아는 담임교사 간의 견해차로 인한 갈등도 교사의 삶을 옥죄는 요소가 되고 있다.

또한 교사는 갈등관리자의 고단한 몫도 감당해야 한다. 학교 안팎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학교폭력과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의 해결과 이의 여파가 고스란히 교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학교에서의 중재 과정도 피곤하고 힘든 일이지만 작은 일도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학부모들의 행동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생소한 재판 분야에 개입해야 되는 일도 있다.

정부는 다시 대입에서 정시 비율을 확대하려는 입시 개선책을 내놓았다. 무엇이 공정한 제도인지, 누구를 위한 공정하고 평등한 제도인지를 따지기 전에, 학교의 본질이 교육기관인지 선발기관인지, 새로운 입시정책이 중등학교에서 일어나는 바람직한 변화의 흐름을 촉진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싹을 자르는 것인지부터 먼저 고민하기 바란다. 부디 교사에게 부수적이고 파생적인 업무의 소진에서 벗어나 교육 본질의 탐구와 소신 있는 교육적 실천 노력에 지쳐 피곤해질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