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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4 18:09 수정 : 2019.12.05 02:37

이창 ㅣ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이다. 각자 나랏일로 바쁜 아세안 9개국 정상들이 부산에 모였다. 대한민국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이번 회의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였다. 아세안은 북한과도 우호적이어서 한반도 문제도 의제에 오른 만큼, 우리 정부도 온 정성을 쏟았다.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이 체결되었고, 여러 국가 정상들과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고 양해각서가 교환되었다. 대통령은 어지러울 정도로 악수를 많이 나눈 것 같다. 그러나 한-아세안 관계가 악수에 그치면 안 되겠다. 악수(握手)로만 끝나게 둔다면 정말 악수(惡手)를 두는 셈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겪었던 일로 미루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

동남아시아는 급격하게 도시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도로, 철도, 상하수도, 공공주택, 폐기물 처리 등 필수적인 기반시설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했다. 지금은 다양한 도시문제에 시달린다. 특히 교통체증은 악몽에 가깝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도시행정가들은 서울이 발전한 과정에 관심이 많고 배우고 싶어한다. 필자는 3년 전 동료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반둥시에 가서 대중교통 시스템에 대해 컨설팅을 한 경험이 있다. 서울시 버스체계의 지식과 노하우를 인도네시아 반둥시에 전달하는 과업이었다. 도로가 충분치 않고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아서 반둥 시민들은 ‘앙콧’(Angkot)이라 불리는 지입제 미니버스를 대중교통처럼 이용한다. 그러나 적절한 규제 없이 난립하다 보니 교통체증은 말할 것도 없고 노선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요금체계는 부실하다. 대기오염과 안전 문제도 심각하다.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인도네시아 도시의 발전 과정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싶었다. 어떤 경제발전 과정을 거쳐 인도네시아가 도시화를 이루었는지, 지금과 같은 도시 형태가 나타난 원인이 뭔지, 기본적인 지식을 쌓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자문할 전문가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 공무원들과 정확히 의사소통하기 위해 한국어-인도네시아어 통역사도 필요했다.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고 제대로 훈련받은 통역사를 수소문했지만 역량 있는 분을 초빙하기가 쉽지 않았다. 현지에서도 전문 통역사를 구할 수 없어서 한국인 유학생이나 주재원 배우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신남방정책으로 아세안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고 추진력이 생기긴 했지만, 우리나라가 아세안 국가와 교류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1989년에 대화 관계가 수립되었으니 벌써 30년이다. 그러나 그동안 동남아시아와 아세안 국가를 이해하기 위해 지식을 쌓으려 진지하게 노력했는지 의문이다. 아세안은 젊은 국가이고 성장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니, 교역을 강화해서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자고 한다. 하지만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가? 아세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있는가?

이번 회의를 계기로 한국과 아세안이 서로 중요시한다는 점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한류의 번성으로 기회도 잡았다. 하지만 더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아세안에 가서 공부도 하고 언어도 배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동남아시아 전문가를 육성하자. 민간에서 주도해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국가가 나서서 동남아시아와 아세안에 대해 지식 기반을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교역도 하고 성장도 하고 신남방정책도 생명을 얻는다. 한-아세안 정상 간의 악수를 ‘신의 한 수’로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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