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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8 17:15 수정 : 2005.02.18 17:15

교토의정서가 드디어 발효되었다. 발효가 개시된 2월16일 세계 곳곳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서울에서도 교토의정서의 발효의 의미와 영향을 따지는 심포지엄이 하나 열렸다. 정부의 여러 장·차관과 국회의원, 기업체 대표 등이 참석해서 의견을 개진할 정도로 크게 벌어진 이 행사의 제목은 ‘교토의정서 발효, 위기인가 기회인가’였다. 제목에서 보이듯이 참석자들의 주된 관심은 이 국제협약이 한국, 즉 한국경제에 유리할 것인가 불리할 것인가에 모아졌다.

교토의정서는 근원적으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협약이다. 기후변화는 현재진행형의 현상이다. 여기저기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피해는 해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10~20년 후에 전지구적 재난이 닥칠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 지난 100년간 평균 기온이 지구 평균의 2배가 넘는 1.5도 상승했으니 재난의 정도도 지구 평균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토의정서 발효를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으로 받아들이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우리가 이 노력에 어떻게 동참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경제적 득실을 따지기에 바쁘다. 미국이 불참하고 있고, 중국과 인도 등도 기후변화에 아랑곳없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급속하게 증가시키고 있는데,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면 국제경쟁력이 약화되어 이로 인한 경제적인 타격이 크리라는 것이 대다수 기업인과 정부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에너지 집중도가 높은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온실가스 감축은 경제를 망치는 길이 될 것이 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에 비해 2배 가량 늘었다. 경제도 같은 정도로 성장했다. 정부의 계획대로 2만달러 시대로 진입하려면 온실가스를 계속 더 많이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렇게 온실가스를 더 많이 내뿜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는 지금 이미 일본, 영국, 독일 국민 한사람이 내놓는 온실가스보다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내뿜고 있다. 이들 국가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몇 년 후면 1인당 배출량이 영국이나 독일의 2배가 된다. 2012년까지 우리나라는 교토의정서의 구속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온실가스를 마구 내놓아도 비난은 받겠지만 특별한 제재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2013년부터다. 그때는 온실가스 감축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동안 너무 많은 온실가스를 내놓은 탓에, 요구받는 감축량도 대단히 클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기후변화도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의무가 될 것이고, 이때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입게 될 경제적인 타격은 1997년 외환위기보다 훨씬 심할 것이다. 그런데도 교토의정서를 놓고 경제적인 득실만을 따질 것인가?

기후변화는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도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만 10년 또는 수십년 후 우리 삶과 우리 후손의 삶에 닥칠 고통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줄일 것인가인데, 지금과 같은 산업구조, 사회구조로는 안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들 구조 자체를 온실가스를 덜 내놓는 쪽으로 바꾸어가야 하는 것이다. 삶에 대한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넓은 아파트에서 한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고 지내는 생활이 아니라 조금 작은 집에서 겨울에는 옷을 두텁게 입고 사는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큰 차를 타고 다니고, 이를 위해 도로를 넓히고 산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 결과 자동차에게 점거되었던 도로가 보행자와 자전거에게 돌아가면 도시는 전보다 훨씬 쾌적한 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도시를 달리는 전차나 지하철의 전기와 버스의 연료가 원자력발전소나 중동의 산유국이 아니라 도시 건물지붕을 뒤덮은 태양광발전기와 바이오 연료로 공급된다면 나라 전체가 더 살기좋은 곳으로 바뀔 것이다. 교토의정서 발효가 기회가 될 수 있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

이필렬/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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