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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2 18:33 수정 : 2005.02.22 18:33

장기 표류하던 국책사업인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사업’이 해결될 것인가? 정부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국무회의를 통과시켰고, 이 법은 조만간 임시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이 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유치지역 지자체에 특별지원금 3000억원을 사업 초기단계에 지급하고, 운영단계에서는 폐기물 반입 수수료 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지역에 재원을 조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재정적 어려움에 놓인 몇몇 지자체에서는 구미가 당길 만한 사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3000억원 지원이라는 특별법 제정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씁쓸한 구석이 많다.

한마디로 말해 3000억원 특별법은 불신의 결과다. 그동안 산업자원부는 방폐장(핵폐기장) 유치지역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가 지자체에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몇몇 지자체장은 지역 지원에 대한 약속을 법적으로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따라서 3000억원 특별법은 정부에 대한 지자체의 불신에서 비롯된 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전력생산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대한 지역 내 불신도 문제다. 원전이 들어오면 그 지역이 발전한다는 장밋빛 약속을 내놓았지만 변화된 모습을 실감하지 못하는 지역주민으로서는 잘살 수 있다는 약속이 공허하게 다가올 뿐이다. 한수원은 아직까지도 원전 가동으로 인한 온배수 보상 문제로 지역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특별법은 갈등의 산물이지만 또다른 갈등을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핵폐기장만큼 오랜 갈등을 겪어 온 국책사업은 드물다. 초기의 문제점이 정부의 비밀 행정과 무리한 추진에서 오는 갈등이었다면, 민주성이 강조되고 유치지역 지원이 불거지면서 갈등의 양상이 점차 주민 사이의 찬성과 반대로 바뀌어갔다. 정부의 지원으로 지역을 발전시켜보겠다는 쪽과 안전성 문제와 위험시설에 대한 혐오감 등의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특별법이 유치를 희망하는 찬성 쪽에 더 큰 힘을 실어줄 수 있지만, 특별법에서 제시하는 지원금 때문에 지역에서 또다른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주객이 전도되어 지자체들이 자칫 잿밥만 보고 뛰어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하는 선행 장치가 필요하다.

중·저준위 핵폐기장이라 할지라도 오랜 기간 관리 대상이 되는 것이므로 터를 결정하는 데서 안전성, 주민 수용성, 사회적 조건 등 다양한 기준들이 적절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0년 이상 방사선이 누출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적 안정성과 가장 적절한 지질학적 특성을 갖추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에서는 주민 수용성을 우선시하여 지역 지원금을 구실로 터를 선정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후보 지역들이 과거에 검증을 받았던 곳이긴 하지만, 과거 조사에 대한 객관성 확보가 부족한 탓에 추후에 논란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고준위에 비해 위험도가 낮다고는 하지만, 안전을 가장 고려해야 할 사안이기에 터의 안전성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이를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먼저다.

사용후 핵연료와 중·저준위 폐기물을 분리하고, 지원금을 둘러싼 오해를 해소하여 체계적 보상을 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원전 정책과 방사성 폐기물 관리 정책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지역지원에 대한 특별법도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국민들이 오해와 편견을 계속 갖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핵폐기장 유치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포화 시점의 시급성을 언급하며 이번 특별법이 통과되면 곧바로 새로운 터 선정 절차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방사성 폐기물을 둘러싼 오해와 불신을 씻지 않는 한 터 선정 과정에서 또다시 갈등만 부를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핵폐기장 국책사업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정익철/시민환경연구소 해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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