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22 18:40
수정 : 2005.02.22 18:40
억대의 내기골프를 하다가 도박죄로 구속기소된 4명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을 두고 시끌시끌하다. 이번 판결의 본질은 정치자금과 뇌물을 내기골프로 줄 수 있는 길을 터 놓은 게 아니라, 고액의 내기골프가 ‘도박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하급심의 판단이다. 도박죄가 아니라도 이러한 행위가 ‘무죄’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형법에서 말하는 도박은 우연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재물의 내기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개인적 기량에 따른 승부를 내는 스포츠를 (개인적 내기골프를) 도박죄로 인정하려면 기업이나 협회에서 주관하는 상금이 걸린 골프대회도 모두 도박죄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회사나 협회가 아니라 개인이 상금을 걸었다고 법적 평가가 다를 수는 없으니까.
더군다나 이번 판결이야 조그마한 우연이라도 개입되는 내기이면 도박이라는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니 검찰에서 항소한다면 원심파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하급심에서 상급심의 법관들이 사실을 법률에 두루뭉술하게 끼워 맞추는 법률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현행 법률의 허점을 알아내고 법률을 타당하게 개정하도록 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상식과 법감정을 앞세워 비난여론으로서 해당 법관을 몰아붙인다면, 법관은 오히려 엄격한 법률해석에 의한 재판을 못하게 될 것이며, 입법부가 만든 허점이 있는 법률을 억지로 끼워가며 계속 재판하다가 정작 큰 일을 그르치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마치 법률규정이 없어 친일파 후손들이 친일파 재산을 반환받아가고 있는 현실처럼 말이다. 제대로 된 법률이 없다면 아무리 고매한 법관이라고 해도 정의관념에 맞는 판결을 할 수 없다.
법관은 법적 양심과 소신에 의하여 판결을 하지만, 결국은 법률의 엄격한 해석이 요구되고, 제대로 된 법률과 형법의 엄격한 해석이 없는 한, ‘그때그때 다른’ 판결로 일반 국민의 불신은 오히려 더 커질 수도 있다. 이정렬 판사의 판결이 주는 참신하고 의미있는 지적은 높이 사고 싶다.
그런데 신문기자가 뽑아놓은 자극적인 제목과 본질을 보지 않은 여론재판으로 소신있는 판사가 매장당하는 거 같아 씁쓸하다. 오히려 현행 법률을 엄격히 적용하면 도박죄가 되지 않을 수 있음을 밝히고, 법률의 명확한 보완과 해석을 요구한 판결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일을 정치자금법 완화를 위해서나 노력하고 있는 국회의원이 하겠는가?
인터넷과 여론의 힘이 이정렬 판사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이러한 판결만으로 정치권의 부패와 연결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고 제 머리 못 깎을 정치권이 선명하고 엄격한 정치자금법과 사람을 위한 법률, 밝고 공정한 법률을 만들 수 있도록 압력을 넣는 데 사용되어야 옳지 않은가.
김정훈/서울 도봉구 창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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