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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3 18:33 수정 : 2005.02.23 18:33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많은 지식인과 시민이 권위주의적 국가의 잘못된 권위를 깨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김지하의 〈오적〉은 이 시기 체제 엘리트를 조롱함으로써 잘못된 권위를 통쾌하게 깨뜨렸던 하나의 전범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체제나 그 엘리트들의 낡은 권위가 무너졌다는 것을 확인한다. 요즘에는 영화마저 “대한민국 성공 신화의 주역”인 박정희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근엄한 엘리트들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국부’라 불러가며 대한민국의 낡은 권위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런 ‘신성모독’을 개탄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했던’ 대한민국에 집착하는 그들 자신도 국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데서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공격하는 사람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선거 제도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을 ‘개구리’ 운운하며 조롱한다. 게다가 고급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에게 ‘간첩’이라는 딱지를 붙이기까지 한다.

권력과 권위에 대한 조롱은 절대주의적 혹은 권위주의적 국가라는 우상을 깨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국가 원수에 대한 사적인 조롱이나 문화예술인들의 풍자는 사회 발전의 지표이지 결코 퇴락의 지표가 아니다. 하지만 참된 권위와 정당한 권력은 언제나 필요하다. 이것들 없이는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찍이 공자, 한비자, 묵자 등 난세의 사상가들은 백성에게 안정적 삶의 터전을 가져다줄 권위를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또한 홉스는 〈리바이어던〉을 통해 낡은 정치적 권위와 권력이 무너져가던 영국에 새로운 권위와 권력의 토대를 마련하려고 했다. 권위와 권력의 공백이 초래하는 무정부 상태는 많은 이들에게 재난일 뿐이기 때문이다.

참된 권위가 필요한 것은 정치나 국가의 영역만이 아니다. 경제계나 시민사회에도 권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다원적 민주주의가 발전된 사회에서는 각 분야에서 형성된 권위가 이해 충돌을 해결해야 한다. 얼마 전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나타난 무정부 상태는 국가 체제 이외의 부분에서도 함께 인정할 수 있는 권위가 형성돼야만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경제 분야에서도 권위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겨레〉 2월21일치 “한국증시 체질개선 재평가중”이라는 기사는 시장에서의 권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한국 기업들이 분식회계와 기업 지배구조 등으로 잃었던 신뢰와 권위를 체질개선을 통해 회복하자, 증시가 재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정당한 활동을 통해 권위를 세울 때 한국 증시는 지금보다 2~4배 또는 그 이상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나라의 낡은 권위를 깨부수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은 이제 낡은 권위를 대신할 정당한 권위를 세우는 일에 분투해야 할 것이다. 정당한 권위를 세우기 위해 합리적 제도를 마련하고 그 제도를 스스로 존중해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 낡은 권위를 잃어버린 상실감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역시 진정으로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고 나라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찮은 지위를 이용해 권위주의나 전체주의의 우상을 되살리려고 발버둥치고, ‘관습헌법’ 같은 궤변이나 과거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참된 권위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사회학의 아버지 에밀 뒤르켕은 말한다. “일단 세태의 변화에 따라 과거의 신념이 사라지게 되면, 그것을 우리는 인위적으로 재확립시킬 수가 없게 된다. 다른 신념과 관행을 찾기 위해 우리는 반성과 합리적 의식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우상이 무너진 곳에 합리적 권위를 세우는 길은 어렵지만 외길이다. “반성과 합리적 호소를 통한 신뢰 회복.” 이것이 우리 사회에 각 분야에서 참된 권위를 세우는 길이다. 나라의 권위 회복 방법으로 공자가 믿음을 풍요나 무력의 앞자리에 놓은 연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현/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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