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23 19:32
수정 : 2005.02.23 19:32
경기도 평택경찰서가 21일 만들고 같은 날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가 손에 넣은 ‘0216 경비대책-국방부, 미군 공여지 매수를 위한 물건조사’라는 문건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과정이 순박한 농민들에 대한 폭력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경찰이 이 문건에서 예상 문제점이라 해서 나열한 사태는 이곳 농민들을 보는 편협하고 뒤틀린 시각을 잘 보여준다. 경찰은 주민들이 부녀자 알몸시위 등을 이용해 여론 악화와 인권 시비를 유도하거나 미군부대 기습시위, 평택시청과 경찰관서 항의 방문, 몸싸움 등 극렬 저지에 나설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보면서 경찰은 사복·운전·우발조 등의 직원들에게 수갑을 휴대하도록 했다.
경찰이 세운 경비 대책의 기본 방침을 밝힌 대목은 이른바 ‘경비’의 본질을 잘 드러내준다. 문건에는 그 기본방침이 ‘미군 공여지 물건조사 진행 보호 및 업무협조’라고 돼 있다. 물건조사를 하는 국방부와 조사원 편에 서겠다는 태도가 선명하다. 위탁기관이 공권력 지원을 요청하면 경찰력을 투입한다는 방침이 그런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결국 경찰의 경비 대책이란 물건조사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와 저항을 물리력을 써 단단히 봉쇄하고 국방부가 물건조사를 강행하도록 협조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경찰은 33명이 11조로 나눠 움직이는 물건조사원에 대해 1조에 정보채증 요원 3명씩을 붙여 협조하도록 했다. 여기까지 가면 조사원 따로 경찰 따로라고 보기 힘들다. 경찰은 물건조사에 그저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충성스럽게 모든 힘을 기울여 물건조사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평택경찰서는 경비부대로 체제를 바꿨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경찰서에 최소 인원으로 된 경비본부만을 두고, 경찰 업무 대부분이 팽성과 서탄, 그리고 미군부대(케이-6) 안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이름만 경비부대지 진압중대·정보보안·경비·생활안전·형사·강력·사고 조사·지능팀 등 대부분의 부서가 책임 간부들의 지휘와 서장의 총괄 아래 통째로 옮겼다. 경력으로 보면 진압 7개 중대, 여경 2개 팀, 경찰서 직원 92명 등이다. 근무시간도 아침 9시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물건조사가 강행되는 하루 내내다.
한편 평화유랑단 단장으로 와 있는 내 주변에 정보보안 요원을 4명이나 둔다는 대목도 있다. 신변보호라는 미명 아래 감시하고 발을 묶겠다는 얘기다. 이것은 공공연한 정치 사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1일 팽성 상황은 위 문건의 내용이 실제임을 증명해주었다. 다만 경찰의 예상과 달리, 순박한 농민들은 경찰의 빈정거림과 조사원들의 도둑 조사에 울분을 토하고 조사 거부의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결코 폭력은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곳 주민들은 한번도 정부로부터 인간으로 예절바르게 대접받지 못했다. 기지 확장과 토지 수용에 관한 한 한마디 의논도 없이 종이쪽지 한장 툭 던져주고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왔다. 이런 까닭에 ‘경비대책’ 문건을 한개 경찰서의 시각일 뿐이라고 볼 수가 없다. 물리력과 행정력을 동원한 정부의 이런저런 폭력과 독재에도 농민들은 끝까지 단결해 생명의 터전을 지킬 것이다. 정부는 평택경찰서가 만든 경비부대를 당장 없애고 이제부터라도 주민들에게 성실하고 겸손한 대화를 청해야 할 것이다.
문정현/신부, 평화유랑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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