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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2 19:42 수정 : 2005.03.02 19:42

신문사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요즈음 신문을 잘 안 본다. 인터넷에서 번쩍거리는 사진을 클릭하거나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를 훑어보는 것으로 대신하는 날이 많다. 사람들도 대충 그런 모양이다. 만나서 하는 얘기가 대략 비슷한 걸 보면.

그런데 이 선정적 제목의 기사나 번쩍이는 그림들, 정작 읽어보면 허무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대통령이 어쨌다 카더라”라는 제목인데, 내용은 이름 없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귀띔’이고, “드라마 결말의 비밀”은 네티즌들이 어떻게 짐작한다는 게 전부다. 어떤 때는 제목과 딴판으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은 이렇다”인 적도 있다.

이번 임시 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한 사립학교법 개정 이야기가 꼭 그렇다.

“학교를 전교조 손에 넘길 수는 없다, 건학 이념을 살릴 수 없다”며 학교를 닫겠다고 하기에, 정말 그렇게 강력한 것인가 해서 자세히 들여다봤으나,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된다. 고작 이사나 인사·징계위원 중 일부를 운영위원회나 교수회가 추천하게 하고, 이사장의 배우자나 직계 친족은 학교장이 될 수 없다는 정도다. 여전히 이사회, 인사위원회의 과반수는 이사장 맘대로 할 수 있다. 교원 임용에서 공개 전형을 의무화한다지만, 그렇다고 누굴 뽑으라고 정한 게 아니고 교장에 임용권을 준 것도 아니니, 최종 결정은 이사장 권한이다. 전교조 사람들이 운영위원회를 장악한다고 하지만, 그 권한이 상당히 제한적일 뿐 아니라, 학교 편이 많은 학부모 위원들이 다수인지라 발언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사실은 이렇다!’고 소리치고 싶다. 이런 걸 막겠다고 추운 날 여의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왜 이런 개정이 필요한지? 사실은 이렇다. 적어도 내가 접한 바에 따르면, 사립학교 사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알고 보면 그 발단은 굉장히 사소한 곳에서 시작한다. 매년 졸업생들의 동창회비 걷어 냈었는데, 나중에 보니 동창회가 없다. 그 돈 걷어서 학교 명의로 콘도를 구입했단다. 이런 문제 좀 해결하자고 면담을 요청하면 들어줄 리 없고, 그래서 한 교사가 이를 밖으로 알리려고 한다면, 이런 교사는 기자 불러다가 학교 명예를 훼손했으니 고소하고 징계한다. 징계 수위는? 일단 파면으로 하자. 선생들 기 좀 죽여야 하니까. 징계 절차? 이것도 간단하다. 언제 열리는지도 모르는 회의를 열어, 이미 정해져 있는 대로 징계하면 그만이다. 나중에 법원에서 취소되면 “아님 말고”.

또 하나의 공통점-문제 사학에는 언제나 친척들이 많다. 이사는 대략 이사장 부인과 아들, 며느리고, 법인 소속 학교장들이나 보직 교사들도 딸, 조카, 사돈이기 쉽다. 법인 쪽 증인의 반대 신문은 언제나 “증인은 이사장 며느리의 오빠로서, 법인의 회계 업무를 담당해 왔지요” 정도로 시작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있어야 마음도 잘 통하고, 손발도 착착 잘 맞아서 그야말로 ‘건학 이념’을 살리기에 좋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떤 교사를 뽑을지 어차피 내 맘대로 할 것인데, 굳이 공개전형을 법으로 정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상처가 곪고, 그래서 결국 터지는 건 바로 그런 곳에서다. 친한 사람들‘만’으로 구성되어, 누구도 감히 들춰 볼 수 없었던 바로 거기.

그래서 굳이 법으로 정해서 그 중 “몇 사람쯤”은 학교 구성원들이 추천할 수 있게 하고, 조금 열어 두자는 것이다. 적어도 국고가 3조원이나 들어가고, 우리 아이들이 ‘공교육’의 이름으로 인생의 소중한 시기를 보내는 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드러내 곪아 터지는 일을 조금 줄여 보자는 것이다. 지금도 국회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의 전모-사실은 이렇다. 허무하지?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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