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2 19:44
수정 : 2005.03.02 19:44
이장규(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씨가 중앙일보에 쓴 칼럼 ‘MBC·KBS, 그리고 한겨레’는 생뚱맞다.
그는 칼럼에서 최문순씨의 문화방송 사장 선임을 스타 탄생이라며 반겼다. 연공서열을 무시하고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등 파격인사를 했고, 단일호봉제 폐지, 임금 10% 삭감 추진 등 노조와 일전불사를 선언했다고 했다. 노조가 싫어하겠지만 반발을 수습하면서 개혁을 하면 최고의 경영자(CEO)가 될 것이라고 했다. 노조와 대립각을 세웠다고도 하고, 노조위원장 출신임을 부각시켜 어디 잘 되는지 보자고 읽힘은 그냥 지나치자.
그는 ‘경영은 경영자의 고유권한’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글을 전개하고 있다. ‘노조의 경영참여는 안 된다’ 나아가 ‘그럴 경우 회사는 망조다’라고 믿는 듯하다. 그의 신념이니 남이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믿는 바를 뒷받침하기 위해 열거한 항목이나 추론에 이르러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중앙 일간지 편집국장과 대기자를 지낸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는 문화방송의 신임 사장을 화두로 꺼낸 뒤 맥락이 비슷하다면서 한국방송과 한겨레를 말밥에 올린다. 이어 세 언론사를 두고 여섯가지 공통점을 든다. ①사주가 없다 ②막강 노조가 경영·제작에 영향력 행사 ③노무현 정부 들어 그런 경향 심화 ④경영실적 급속 악화 ⑤구조조정 가장 소극적 ⑥친정부적이라는 것들이다. 정리하면 본디 이들 노조가 사주 없는 회사를 장악하여 설쳤던 바, 현정부 들어 짝짜꿍이 맞아 친정부적 보도를 일삼으면서 경영이 더욱 나빠졌다는 추론이다. 자신의 신념인 ‘노조의 경영 참여는 망조’에 그대로 대입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경영이 나빠진 것은 3개사뿐이 아니다. 흑자기업이 거의 없다. 중앙일보조차 50억원의 적자였다. 이는 언론사 전반의 광고시장 침체에 기인한 것이지 노조나 논조와는 무관하다.
이제 한겨레 얘기를 하자.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다는 말도 한겨레신문사에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겨울 80여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다. 노조와 우리사주조합이 통합된 조직과 회사가 함께 꾸린 비상기구가 중심이 돼 구조조정을 해냈다. 이때 노조는 한없이 약했고 동시에 막강했다. 모든 사원들은 두 달남짓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낸 끝에 각각 힘든 선택을 했다.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모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이를 추스르고 새로운 사장을 맞아 또다른 도전 앞에 서 있다.
한겨레가 ‘언론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친정부적이라고? 그가 말하는 친정부적임이 무얼 뜻하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정부의 정책에 찬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면 맞다. 한겨레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한겨레가 지향하는 바와 일치할 때 지지한다. 새 행정수도 정책이 그 사례다. 핵폐기장, 새만금,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등의 정책은 비판해 왔다. 누가 정권을 잡을까, 누가 정권을 잡았느냐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일삼아온 축과 분명히 다르다. 1997년 대선 당시 중앙일보 정치부가 만든 ‘이회창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문건은 된다 싶었던 이 후보한테 ‘올인’한 행태로 각인돼 있다. 기왕의 행태대로라면 자사의 회장이 노무현 정부의 주미대사로 옮겨앉은 마당에 중앙일보가 더 걱정되지 않겠는가.
또 사원들의 합의로 편집국장 직선제를 폐지한 것은 아쉽기는 하나 이씨의 말처럼 자존심 상하는 일은 아니다. ‘편집권의 독립’이란 바로 ‘정권과 사주로부터의 독립’ 아닌가. 우리의 ‘사장 선출제’는 엄연히 살아있다. 당연히 직선제 폐지로 “제 아무리 고상한 이념을 추구해도 적자경영을 헤어나지 못하면 말짱 헛것임을 깨달았다”는 비아냥을 받을 이유가 없다.
칼럼으로 자기 이름과 자사의 지면을 어찌하든 상관할 여유가 없다. 한겨레라고 비판 대상에서 벗어나 있지도 않다. 잘못하면 언제든지 비판하라. 단, 사실에 바탕을 두고 말하라. 호재다 싶어 두루뭉술 엮어서 자신의 논지를 펴지 말라. 잘 모를 때는 함구가 상책이다.
임종업 여론매체부장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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