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2 19:46
수정 : 2005.03.02 19:46
겨울 스포츠의 두 큰 기둥인 프로농구와 프로배구 경기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흥행열기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농구는 요즘 플레이오프 진출을 건 대혈전이 계속되는 탓인지 관중 수는 구장별로 평균 6000~7000명을 오르내린다. 전기 리그를 순항 중인 배구는 많으면 3000~2000명, 적게는 수백명이다. 1997년에 프로로 전환한 농구는 특정 그룹의 팬이 고정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크게 성공한 프로리그다. 지난해 관중은 110만명이었다. 올 시즌에는 10%가 늘어난 120만명을 기대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야 프로로 변신한 배구 쪽 형편이 훨씬 불리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인기가 낮아 관중 부족에 허덕인다. 프로 세계는 냉정한 것이어서 흥행에 따른 인기가 오르는 곳에 팬이 몰릴 수밖에 없다. 농구의 성장세는 갈수록 커져 배구와 비교하면 어른이 뛰고 아이는 걸음마를 하는 격이다.
배구가 프로화되기 전인 지난달 신문에서 본 내용이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한 모델학원에서 남녀 선수들이 옷 입는 법, 걸음걸이, 웃음짓기, 화장법 등을 배우는 장면을 소개했다. 프로화에 앞서 프로마인드를 체화하고 프로무대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마련된 ‘프로화 오리엔테이션’이다. 영화로 치면 배우 격인 선수의 상품화를 꾀한 것이다. 패션모델이 된 프로선수를 연상시킨다. 보수적인 배구계가 크게 변했다고 느낄 만한 근거는 다른 데도 있다. 여자선수 운동복인 사각팬티를 삼각으로 바꾸도록 추진한다는 것이다. 경기보다는 선수들의 시원한 각선미에 더 관심을 둘 수도 있는 관중이나 텔레비전의 엿보기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 배구판에도 관중이 조금씩 늘고 있다. 지난달 27일 삼성화재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설욕전을 펼친 대전 충무체육관에는 4000여 안방 팬이 몰렸다. 20일 서울 개막전에는 7000여명이 몰려 배구판에 ‘제2의 르네상스’가 찾아오는 게 아니냐는 희망을 던지기도 했다. 경기장에 평년보다 많은 관중이 찾아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화 덕분도 있겠으나 최근 들어 유례없는 삼성과 현대의 물고 물리는 역전극 덕분일 것이다. 지난 시즌까지 배구판은 삼성의 독무대였다. 삼성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대회 8년 연속 우승, 77연승이라는 ‘독주 체제’가 경기의 흥미를 반감시켜 관중들이 경기장을 외면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반면에 프로농구의 성공에는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은 틈새시장 전략과 방송사들의 경쟁 유도로 텔레비전 화면에서 주요 스포츠로 자리잡은 데 원인이 있다. 빠르고 현란한 경기 운영도 가파른 종목 성장의 한 요인일 터이다.
배구의 프로화는 야구와 축구, 농구에 이어 네번째다. 실업팀에서 운동복만 바꿔입은 남자부 네 팀과 오는 가을철부터 프로로 전환할 예정인 여자부 다섯 팀만이 이번 리그에 참가했다. 완성된 프로리그와는 거리가 멀다. 말로만 프로지 일본과 같은 세미프로 수준이다. 90년대 중반까지 축구·농구와 어깨를 견주던 인기 스포츠가 추락을 거듭하더니 지난 시즌에 들어서는 아예 군소 종목으로 분류될 정도였다. 관중 부족이 첫번째 요인이다. 경기장에 볼거리와 흥행성이 결여된 탓이다. 한국 배구의 세계 순위가 10위권 안에 드는 것으로 보면 경기 능력은 출중한 데 반해 ‘장사’는 제대로 못한다는 말이다.
프로농구가 성장한 배경에는 미국프로농구(NBA)의 영향이 크다는 점도 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유럽지역과 남미의 브라질·아르헨티나 쪽에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배구는 미국 스포츠의 영향을 받는 한국 시장에 파고들 여지가 매우 좁다.
배구도 잠재력이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있다. 신인선수의 고른 등용을 위해 자유계약제 대신 드래프트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팀 전력의 평준화에 기여할 것이다. 한 경기에서 후위 공격, 가로막기, 서브 부문에서 각각 3개 이상씩 성공하는 선수에게 상금을 주는 ‘트리플 크라운제’ 도입은 박진감 있는 경기를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이다. 프로화된 배구가 흥행성을 갖춘 공격적 마케팅으로 애호가 시장을 넓히는 것은 이제부터다.
이영일 논설위원
re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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