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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9 20:39 수정 : 2005.03.09 20:39

지난 1월20일 국민연금 반환일시금이 금융기관 채무액 이상인 신용불량자에게 반환일시금을 지급함으로써 신용을 회복시켜 주자는 취지의 ‘반환일시금 지급 및 신용회복 특별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바 있다.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면 금융거래가 중단되고 취업에서 일정한 제한을 당하는 등 각종 제약을 받는 현실에서 원리금 삭감 또는 상환기간 연장 등 기존 신용불량자 대책의 한계성을 고려할 때 신용불량자의 경제적 재기를 위해 신용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급선무라는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렇지만 급여의 기능상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국민연금의 반환일시금을 부활하여 신용회복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반환일시금을 국민연금이 급여 형태로 설정한 것은 도입 초기 당연적용 대상이 일부 국민에 한정되어 있고, 단기 취업 후 노동시장에서 탈퇴함으로써 연금 재가입 및 수급 기회가 낮은 가입자들에게 기여한 만큼의 보상을 제공하여 제도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반환일시금은 지급과 동시에 연금수급권의 상실을 수반하는 만큼 노후생활보장이란 국민연금 제도의 취지에 원래부터 합치되기 어려운 급여였다. 그래서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당연가입 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하면서 반환일시금 지급사유 중 대부분을 차지했던 자격상실 후 1년 경과 지급규정을 삭제함으로써 반환일시금은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국민연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의 소비를 중시하여 미래의 소비를 위한 저축을 등한히하는 성향을 반영하여 근로기간 중 소득의 일부분을 저축하여 퇴직 후 노후에 필요한 소득을 갖도록 강제하는 일종의 사회적 강제저축제도다. 그런데 신용불량자들의 신용 회복이란 명분 아래 연금수급권의 포기 또는 대폭적인 감액을 수반하는 반환일시금을 부활하여 정책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은 신용불량이란 당장의 화를 면하려다 더 큰 화인 노후빈곤 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시안적인 것이며, 노후빈곤 방지를 위한 공적연금 강제가입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다.

또한 국민연금은 고소득에서 저소득 계층으로의 소득이전이란 소득 재분배적 특성과 가입 중 사망, 장애에 대한 보상이란 보험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납부한 보험료의 원리금이 자동으로 개인에게 귀속된다고 볼 수 없다. 어디까지나 반환일시금은 불가피한 사유로 연금 수급 자격을 얻지 못한 자에게 국가에 의해 제한적으로 인정되는 조건부 급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가입자가 개인계정의 민간 저축처럼 보험료 납부금에 상응하는 금액을 반환일시금으로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더욱이 가입 중인 자에게 급여 수급을 허용하며, 가입자 개인이 아닌 금융기관에 급여를 직접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소득 재분배, 공적연금의 일반적인 포괄 위험유형, 일시금 형태의 급여 제한, 삼자로부터의 연금수급권에 대한 보호 등과 같은 사회보험의 일반적인 특성 및 원칙들에 배치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신용불량자의 금융기관 채무를 반환일시금을 통해 해소함으로써 신용회복을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근원적으로 국민연금이 적립기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비롯되지 않았나 여겨진다. 그런데 적립기금은 예측하지 못한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기금에서 발생하는 운영수익을 통해 보험료율을 낮게 가져감으로써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존립의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책결정자들이 목전의 이익에 눈을 감고 장기적 안목 아래서 오로지 연금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는(그것이 비록 공익적 목적을 지녔을지라도) 기금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신용불량자의 금융기관 채무 해소 및 그를 통한 신용회복이 비록 공익을 위한 것일지라도 노후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연금기금 재원을 투입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권문일/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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