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6 19:24
수정 : 2005.03.16 19:24
저는 뒤늦게 취미삼아 늦깎이로 시작한 국악공부에 흠뻑 빠져 우리 음악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예전에 미처 알지 못한 것이 후회가 들 정도로 국악을 사랑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런데 웬일인가요. 직장일로 바빠 텔레비전을 많이 보지 못하지만 틈을 내 텔레비전을 켜면 안숙선님을 만납니다. 그것도 소리하는 쪽과 듣는 쪽이 아닌 일방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광고로 만나게 되니 영광이랄 수는 없지요.
한국을 대표하는 소리꾼 안숙선님이 티브이 광고에 나왔다고 해서 왈가왈부하는 게 고루한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출연한 광고가 어떤 것이냐일 땐 사정이 다릅니다.
“코카콜라.”
제 상식과 일상사를 통해서 본 코카콜라는 그다지 호감이 가는 식품이 아닙니다. 저는 집에서 내 아이에게 콜라류의 탄산음료를 주지 않습니다. 아이의 맑은 영혼에 독소로 작용하니까요. 먹고 안 먹고는 개인 기호라 상관할 바는 못 되지만, 그것이 그 나라 고유문화를 서서히 고사시킨다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코카콜라가 세상의 다양한 문화를 퇴폐적이고 획일화된 문화로 급속하게 탈바꿈시키는 첨병 노릇을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다양한 인종, 언어, 풍습, 정신 등 인류가 오랜 고통 속에 생성한 위대한 문화를, 코카콜라는 한순간에 그들의 자본과 맛으로 유린해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절대 물 부족 국가인 인도의 가난한 한 시골에 콜라회사를 세워 마구 물을 뽑아쓰는 바람에 주민들은 생존에 필요한 물을 공급받지 못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보더라도 결코 생명을 존중하는 친환경적인 식품은 아니지요.
이렇듯 콜라의 폐해를 아는 저는 안숙선님이 콜라 광고에 나오는 걸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그것도 소리를 하시다가 소리가 잠긴 틈을 타 아이가 내민 콜라를 보고 빙긋이 웃으시는 모습에선 자괴심도 들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판소리는 우리가 자랑하는 문화라고 느껴왔기에 그 광고는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눈 하나를 잃었으면서도 수행자처럼 고행하여 득음을 이룬 우리 조상님의 숭고한 의지가 한순간에 배신당한 느낌이었습니다.
국악인들이 종종 이러저러한 기업 광고에 출연한 것 가지고 지금껏 흉본 적 없습니다. 저리 해서라도 우리 음악을 알린다면 나쁠 게 없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한때 이질적인 고급스러움을 대변한 궁중음악을 방송에서 들을 수 있고, 길고 지루하다는 판소리를 8시간 넘게 완창하여 서양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박동진옹을 뵌 것도 방송이고, 노동의 고단함을 풀던 두레 풍물을 예술로 발전시킨 사물놀이를 안 것도 방송을 통해서입니다.
하지만 안숙선님이 우리 정서와 전혀 맞지 않는 방송광고에 나오시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더군요.
산 하나를 두고도 강 하나를 끼고도 서로 다르게 발전돼온 역동적이고 힘있고 또는 애절하고 구슬픈 우리 소리가 콜라에 섞여 병든 판소리로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콜라로 ‘단청’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콜라는 결코 선생님의 ‘더늠’이 될 수 없습니다. 투정부리듯이 한 제 ‘아니리’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백승휘/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9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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