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7 19:33
수정 : 2005.03.17 19:33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16일 한·일 양국의 반응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분노와 비판이 나라 전체를 뒤덮는 가운데 정부도 대일정책 기조의 전면적 재검토를 들고 나왔다. 반면 일본은 언론 보도도 그리 크지 않으며 사회적 관심도 매우 낮다. 이런 격차가 바로 한-일 관계의 어려움과 우리의 대일외교의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열도를 휩쓸어 온 ‘한류’ 열기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바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사회에 보수화·우경화 물결도 점차 확산되면서 한-일 관계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하고 있다. 〈엔에이치케이〉가 주도한 한류 붐에서, 한-일 관계를 비정치적·비역사적인 차원으로 탈색하고 한국을 끌어안으려는 의도를 읽는 견해도 없지 않다. 한류의 소비자도 정치적 참가의식이 비교적 약한 여성과 청년층이다. 여러 불만을 가진 그들의 남편과 아버지들은 우파적 신문 잡지를 숙독하면서 보수 우경화에 여론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피상적인 소비문화에 머물고 있지만 한류 현상이 한-일 관계, 나아가 일본의 대아시아 관계 전반에 있어 상호의존이라는 큰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상호의존과 보수 우경화라는 두 움직임이 교차하는 일본에 어떻게 대응하고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상호의존의 흐름을 정치적으로까지 끌어올려 보수 우경화 추세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큰 과제들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정부가 대일외교 기조의 전면적 재검토를 표방하고 나섰다. 현재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정부 차원의 일정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해가 된다. 1998년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 이래 우리는 대일 화해외교를 전개했음에도 우리가 얻은 것은 없고, 일본 상황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과 우려도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대일 퍼주기 외교’의 실패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도 당연하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몇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선 정부는 더욱 폭넓고 지속적인 설명과 정보제공이 필요하다. 대일 역사문제 제기의 기점이 된 노무현 대통령의 삼일절 연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움직임과 판단이 당연히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독도와 역사 교과서 문제가 단순히 일개 지방자치단체나 출판사의 문제가 아니라 고이즈미 정권의 상층부와도 연결된 체계적 움직임이라는 위기의식과 불신감도 엿보인다. 총체적이고 원칙적인 문제제기도 중요하다. 그러나 배경에 대한 인식의 정지작업 없이 돌연히 제기되는 총론적인 대일비판은 적어도 ‘외교’라는 측면에서는 효과가 반감된다. 독도도 역사교과서도 아직은 일본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특정한 이해관계와 신념을 가진 소수가 전반적인 우경화 분위기에 편승한 측면이 크다. 망원경보다 현미경이 필요하며 이들 소수가 다수와 연결되는 부분의 차단이 과제일 것이다.
둘째로 일본 사회의 다양성을 시야에 둔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외교적 ‘공세’가 한층 더 필요하다. 시마네현 어민이나 ‘군부’와 같이 독도 문제를 분쟁화하고 한국이나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데 이해관계를 가지는 집단이 있는 한편,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의 협력에 이익과 가치를 발견하는 세력도 있다. 일본에 대한 밖으로부터의 비판뿐만이 아니라, 내부적 다양성에 의한 내발적 변화 촉진이 쉽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대응이다.
셋째로 말의 비난보다 조용하지만 확고한 행동을 통해서 급변하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정세에 대비한 큰 틀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한-일 관계를 다각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일본의 보수 우경화의 어떤 형태의 어느 부분이 우리의 감정, 원칙, 이해와 배치되는지에 대한 냉철한 선구안이 요청된다.
이종원/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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