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7 19:35
수정 : 2005.03.17 19:35
예상했던 일이다. 중국과의 영토분쟁 지역에 자위대를 파견하려는 일본 정부의 묵인 하에 시마네현 의회가 2월22일을 ‘다케시마(독도)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니 묵인했다기보다도 암암리에 고이즈미 정권과 자민당은 조례안 가결을 부추겨 통과시킨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10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100년 전 일본은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조처에서부터 한반도 침략의 일보를 내디뎠다.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이권을 확장할 목적 아래 한반도를 독점하기 위해 러시아와 개전을 선포한다. 압록강에서 러시아군을 격퇴하여 기세가 오른 일본 제국주의는 랴오양(요양)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1905년 초 뤼순(여순)을 정복했다. 러-일 전쟁은 미국 루스벨트의 권유에 의해 1905년 5월 포츠머스조약으로 이어지는데, 일본 제국주의는 러시아가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자 그 대신 미국으로부터 한반도와 남만주의 지배를 승인받았던 것이다.
이제 일본은, 조례안을 가결함으로써 악몽을 되살려내고 있다. 헌법 9조의 개정, 자위대 파견, 교과서 왜곡, 영토분쟁과 팽창주의 등 일련의 작태는 ‘일본 제국주의의 부활’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리 내부를 돌아보면, 이번 사건이 1999년 1월22일 한-일 어업협정의 잘못된 체결에서 유래했음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지배하고 있는 독도를 일본이 영토분쟁화하자 한-일 중간수역에 포함시켜 배타적 경제수역 확보에 실패한 점은 두고두고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리 스스로 그들에게 영토분쟁의 근거를 제시한 꼴이 되지 않았는가. 더욱이 한국 관할인 독도를 우리 영토로 관철시키지 못하고 ‘중간수역’이란 모호한 상태로 체결한 것도 분한데, 당시 협상주도 인물이었던 김선길 해양수산부 장관이 상대인 나카가와 쇼이치 농림수산상과 호형호제하던 사이라 협상을 낙관적으로 보고 그 협상에 결사적으로 임하지 않았다는 소리가 회자되던 상황이라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다.
우리 겨레 모두 격노하고 있고 정부에서는 전면외교전도 불사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이럴수록 더욱 냉정하게 대처해야 하겠다.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며 조례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결코 폐기할 그들이 아니다. 폐기할 일이라면 통과시키지도 않았고, 일본정부 또한 방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감정적 대립으로 일관하여 국제 분쟁거리가 되는 상황은 세계경제 헤게모니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그들이 가장 원하는 목표다. 그들 스스로 국제 분쟁화되기를 염원하고 있고 스스로 말을 꺼내고 있지 않은가.
시급하게 제언한다. 첫째, 정부에서는 영토의 주권을 수호하는 일이니만큼 청와대 산하 직속기구로 특별대책협의회를 새로 구성하여 학계나 시민단체의 전문가들과 수시로 대처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 국제사회에서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알리는 설득력 있는 노력이 절실하다. 특히 한-일 협정으로 일단락되었다고는 하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문제가 독일처럼 국제사회에서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해결된 상태가 아니다. 식민지 상태를 경험한 대상국들과 긴밀히 협조하며 국제사회에 호소함으로써, 일본의 도덕성을 집요하게 공략하여 그들의 제국주의적 부활을 경고하고 우리 영토임을 공고히 다지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그들이 생트집을 부리고 있으므로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의 조언대로 ‘대마도’ 문제로 맞불을 놓는 것도 활로를 뚫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문화재청에서는 일반인의 독도 방문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는데, 하루속히 개방하여 실질적으로 우리가 지배하고 있는 현 상태와 우리 관할임을 대내외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엄연히 우리 땅이다. 독도를 지켜야 한다. 독도를 지키지 못하면 100년 전의 일본 제국주의는 부활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훈/전남과학대 교수·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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