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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7 19:44 수정 : 2005.03.17 19:44

며칠 전이다. 딸을 유치원에 들여 보내고 나오는데, 바로 옆 고등학교 담장 너머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신입생-재학생 대면식을 하는 모양이었다. 대열 맨 뒤에는 건장한 교사가 야구 방망이 비슷한 걸 들고 어슬렁거렸고, 사열대에서는 교감인 듯한 분이 1학년 담임을 소개하고 있었다.

“1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은 ㅅ대 00학과와 동대학원 00학과를 졸업하셨습니다. 2반 담임 선생님은 ㅊ대학교 00학과 출신인데….” 호기심이 동하여 소개를 다 들으니, ㅅ대 출신은 1반 담임 딱 한 분이고 나머지 선생님들은 지방의 사범대거나 비명문대 출신이었다. ㅅ대 선생님 소개가 있을 때는 아이들 가운데서 “와!”하는 환성이, 다른 선생님 소개할 때는 “우우”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퍼뜩 이런 생각이 스쳤다. “하나를 살리자고 아홉을 죽이는구만.” 일터로 가는 내내 머릿속이 무겁고 거미줄이 쳐진 듯 찝찝했다. 도대체 이 무슨 해괴망측한 풍경이란 말인가. 저런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 미래를 길라잡이한다는 게 끔찍했다. 아뿔싸, 나도 교사 아닌가. 그렇다. 내가 바로 그 사람들과 공범이었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고 면죄부를 받을 순 없으리라. 나도 학생들에게 “너희들도 공부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럴 듯한 말로 꾀지 않았던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을 수 있다고, 늦더라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침까지 튀겨가며 목소리를 높인 게 바로 나 아닌가.

우리나라 국민치고 교육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다. 참교육을위한학부모회,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교육시민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시장에서 생선 파는 아주머니부터 기러기아빠, KDI연구원까지 다들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교육전문가시다. 그런데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는 말이 “뚜렷한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해법이 없는 게 아니라 찾지 않기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요즘 잇따른 성적조작 비리와 일진회 폭력 등으로 교육자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느니 말이 많지만, 그건 사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해법이 빤히 보이는데도 그 길을 가는 자가 그리 많지 않은 탓이다. 뭔가 많이 가졌다고 그 하나를 위해서는 넉넉하게 베풀고 나머지 아홉은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런 주춧돌 위에 궁궐을 짓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0교시, 〈교육방송〉 방송교육, 쪽집게과외, 학기초 대면식날 학력소개를 두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뭘 생각할런지 어지럽기만 하다. 항상 나머지 아홉을 생각해야 미래가 보인다. 나부터 실천해야겠다. 바로 오늘 교단에 서는 그 순간부터.

신정섭/대전 서구 월평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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