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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7 19:46 수정 : 2005.03.17 19:46

매헌 윤봉길 의사의 사당 충의사 현판을 떼어내 부순 사건의 파장이 만만찮다. 이 사건은 16일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겹치면서 관심이 증폭됐다.

충남지법 홍성지원은 지난 9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로 된 충의사 현판을 떼어내 부순 서천문화원장 양수철씨를 구속한 데 이어 15일 구속 적부심마저 기각했다. 우선 양씨의 구속을 놓고 갖가지 논란이 일고 있다. 양씨의 구속은 시민단체들로부터 과잉처벌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구속은 도주 우려가 있을 경우에 한정된다. 양씨는 사건 뒤 예산경찰서에 스스로 나와 해명했다. 이번 구속은 법적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2001년 11월 탑골공원 ‘삼일문’ 현판을 뜯어내 부순 곽태영 박정희기념관반대 국민연대 대표는 불구속 기소에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사법부는 동급의 사건에 이중잣대를 적용했다.

또 현판 복원 방안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문화재청은 18일 원본 재생 혹은 다른 글씨를 대체하는 방안을 확정한다.

양씨의 구속은 ‘과거사 청산’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과거사 특별법 제정의 지연과 최근 지만원·한승조씨의 친일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양씨는 독립운동가의 사당에 일본군 장교가 쓴 휘호로 민족혼을 짓밟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예산군 쪽이 지난해 수차례 철거 요구를 거부해 단독으로 결행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현판 철거로 민족정기를 되살렸다고 평가한다. 반면, 보수언론은 정부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와 연관시킨다. 최근 정부가 광화문 현판을 교체한다고 발표해 시민단체의 ‘박정희 지우기’를 부추겼다는 논리다.

휘호는 절대권력을 상징한다. 이웃나라 중국도 도처에 역대 황제와 지도자들의 휘호가 넘쳐난다. 특히 1949년 정부 수립을 선포한 마오쩌둥의 휘호는 힘찬 필체로 예술성을 평가받는다. 베이징·칭화·인민대학 등 명문대 현판은 마오의 필적 일색이다. 그러나 지금껏 마오의 휘호가 훼손된 적이 없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마오는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친일 행적’이 없다.

박 전 대통령은 79년 숨질 때까지 충의사, 충장사 등 전국 28곳에 34개의 현판 글씨를 남겼다고 한다. 1~3곳을 기록한 이승만, 노태우 등 다른 대통령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는 독재 권력과 필적에 대한 자신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충의사 휘호는 68년 4월29일 준공식 때 화선지에 쓴 것을 새긴 것이다.

문제는 당시 휘호를 쓴 숨은 의도다. 박 전 대통령은 ‘충효 사상’을 독재 통치의 발판으로 활용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의 애국심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개인의 철권통치를 강화했다.

일부에서는 ‘현판 자체가 역사’이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는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32년 4월29일 만 24살의 청년으로 상하이 훙커우(홍구) 공원에서 일으킨 거사는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중국인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상하이 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 등 일군 장성들의 폭사는 안중근 의사의 맥을 이은 위대한 쾌거다.


충의사 현판 위에 ‘다카기 마사오’(박 전 대통령의 일본이름)의 잔영이 겹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윤 의사도 친일파 의혹을 받고 있는 이의 휘호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충의사는 윤 의사를 더욱 명예롭게 만드는 글씨로 거듭나야 한다. 민족 독립을 위해 거사를 함께 결의한 백범 김구 선생의 휘호라면 윤 의사도 마음이 편할 터이다. 윤 의사가 품었던 불타는 ‘충의’를 선열에게 돌려주는 일은 후세들의 책무다.

충의사 사건 뒤 고양시민회도 행주산성 권율 장군 사당 ‘충장사’ 현판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청와대와 문화재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곳곳의 문화재에 걸린 박정희의 글씨와 왜곡된 백두대간 땅이름 등 ‘일제 흔적’ 청산을 공론에 부쳐야 한다. 현판 휘호는 역사성과 유적 특성에 맞춘 적합성을 따져 결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제2, 3의 ‘충의사 사건’이 잇따를 것이다. 이는 또한 독도 침탈의 망상을 가진 일본에 당당히 맞서는 큰 걸음이 될 것이다.

하성봉 사회부 차장 sb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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