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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30 19:21 수정 : 2012.12.30 19:21

김영배 경제부장

이명박 대통령 이전엔 역대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 중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관을 찾아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전경련 구성원인 재벌 회장들이 군사정권 시절에는 청와대로 불려 들어갔고 그 뒤엔 주로 제3의 장소에서 대통령을 만났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전경련의 대표 격인 4대 그룹 회장들을 만난 곳은 국회 식당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경련 회장들을 만난 장소 역시 바깥의 음식점이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도 전경련 회관을 방문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1월16일 전경련 회관 준공식 때 방문하기로 돼 있었지만, 스무날 전의 10·26 사태로 무산됐다. 대신 준공식에 참석한 이는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다.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의 본산으로 여겨지는 전경련 회관을 직접 방문하는 사나운 모양새를 피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싶다.

불문율처럼 굳어진 관례를 깬 당사자는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은 2007년 12월28일 전경련 회관을 전격 방문했다. 대선을 치른 지 9일 만이었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치른 공식적인 첫 외부 일정이기도 해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읽혔다. 상징은 상징에 머물지 않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트리클 다운’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이는 충분히 설명된다. 당선인 시절의 첫 공식 일정이 그 뒤 이어진 정책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던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을 치른 지 7일 만인 26일 전경련을 방문하기에 앞서 중소기업들의 연합체인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단체연합회를 먼저 찾아갔다. 쪽방촌 방문 등 봉사활동을 제외하면 사실상의 첫 공식 행보였다는 점에서 이 또한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한국 사회가 골 깊은 격차사회로 분열돼 있고, 그 핵심이 재벌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 양극화라는 사정을 고려할 때 매우 잘 짜인 일정이었다.

박 당선인이 전경련에서 재벌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선 “대기업도 변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던진 반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표들을 만나서는 “중소기업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다짐을 한 것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5년 전 ‘친’대기업 기조를 분명히 하면서 투자 확대를 당부하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박 당선인으로선 당시의 쓴소리와 다짐을 실제 정책으로 이어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으며, 재벌 대기업 쪽은 변해야 한다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박 당선인의 말이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변하지 않는 재벌은 변화를 강제당할 수밖에 없다.

‘재계의 맏형’으로 일컬어지는 전경련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시대의 흐름으로 굳어진 경제민주화에 사사건건 딴죽을 걸기 일쑤였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지난 7월 하계 포럼에서 “경제민주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기존 법률로도 경제민주화는 충분히 성취할 수 있다”고 불편한 마음을 털어놓은 게 그 한 예이다. 총수 일가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재벌가의 골목상권 침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부당내부거래 따위로 경제정의가 무너져 있는 현실을 몰라서 한 소리는 아니었다고 믿는다.

재계를 대표한다는 전경련이 스스로 변하려면, 그 첫 시도로 회비를 총수 개인한테서 거두면 어떨까 싶다. 전국경제‘인’연합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재벌 회장들의 ‘계모임’(법적 단체 아닌 임의단체) 성격인데, 왜 회비를 기업 차원에서 내는가. 합당치 않은 것 같다.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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