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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1 19:50 수정 : 2005.02.01 19:50

1989년 5월16일 자오쯔양 총서기는 30년에 걸친 중국과의 갈등을 끝내기 위해 베이징을 찾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마주 앉았다. 장소는 인민대회당. 회담장 옆의 천안문 광장에는 한 달 전에 타계한 후야오방 전 총서기를 기리는 대학생 30여만명이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전날에는 단식시위를 하던 대학생 100여명이 쓰러졌다. 하루 전 도착한 고르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내세우며 민주화의 기수로 자리잡고 있었다.

자오 총서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으로 회담을 시작했다.

“1987년 가을의 13기 1중전회 이후 덩샤오핑 동지는 은퇴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의 경험과 지식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13기 1중전회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처리할 때는 덩샤오핑 동지가 최종적인 결단을 내린다’는 것이 결정됐습니다. 이 사실은 처음으로 당신에게 공개하는 것입니다.” 목소리는 작으면서도 단호했다.

순간 고르비는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자오의 이야기는 비록 자신이 당내 최고 권력자이지만 사실은 덩샤오핑의 들러리임을 밝히는 것이었다. 덩샤오핑이 실질적인 1인 지배 체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외부에 발설하지 못할 ‘기밀 사항’이었다.

자오쯔양은 이 발언으로 당내 강경파로부터 ‘반혁명적’이라는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에 의한 인치(人治)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시위대를 찾아가 “우리들이 너무 늦게 왔다. 미안하다”고 울먹이며 사죄까지 했던 자오쯔양은 결국 총서기 자리에서 쫓겨났고, 탱크를 앞세운 계엄부대가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진압한 이후 지난달 17일 타계할 때까지 15년 동안이나 연금생활을 해야 했다.

자오쯔양의 죽음은 새삼 중국의 정치 민주화를 재평가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덩샤오핑은 비록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사였지만 중국의 정치적 자유와 민주화를 외면했다.

76년 저우언라이와 89년 후야오방이 타계했을 때 대학생들과 인민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이들을 추모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외쳤다.


그러나 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에는 정치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봉쇄됐다. 대학가에는 정치구호가 사라졌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도 사라졌다. 강력한 공포정치가 사회 전반을 지배해 온 것이다.

97년 덩샤오핑의 타계 사실이 알려진 그날, 천안문 광장을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광장에는 연을 날리는 사람과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로 평화로웠다. 그리고 대다수 베이징 시민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한 시민은 “그 노인은 이미 죽은 사람이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라고 말했다. 정치적 자유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들은 천안문 학살의 주역에 대한 반감을 무관심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6년 뒤 자오의 죽음에 대해선 진한 추모의 감정을 드러냈다.

비록 천안문에 모여 공개적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으나 그들은 빈소의 소자보를 통해 “당신은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며 장례를 13일 동안이나 지체시켰다.

후진타오의 현재 집권층으로서는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이전처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라는 대규모 국제행사를 치러야 하는 마당에 국제적인 압력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경제 성장을 앞세운 채 ‘정치적 자유 없는 민주화’라는 중국 나름의 독재체제는 자오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도전받고 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한편에서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자본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돈과 배경만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는 분위기, 그리고 ‘당’이 여전히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정하면서 스스로 ‘시장’이라고 주장하는 모순이 중국 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결국 자오의 유골은 혁명공원묘지에 안치되지 못하고 속세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죽은자에 대한 또다른 연금이 시작됐다.

자오는 저승에 가고서도 ‘연금 사슬’을 끊지 못했지만 인민들 속에서 자신이 바라는 세상이 오는 것을 기다릴 수 있어 만족할지 모른다.

이길우 편집기획부장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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