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8 18:24
수정 : 2019.10.29 14:25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슈논쟁/인터넷 악플 규제]
지난 14일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25)의 죽음을 계기로 인터넷상의 악플(악성 댓글)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이 거듭 환기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어 25일에는 카카오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예뉴스의 댓글창을 없애고 인물 관련 검색어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더 이상 악플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는 데 비해, 구체적인 해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인터넷상의 혐오 표현 등에 대한 규제 강화 여부를 두고선 찬반이 엇갈려왔다. 아래에 두 언론학자의 견해를 나란히 싣는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실효성 있는 규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억압적 규제 대신 표현의 자유가 실체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법을 찾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수 설리의 극단적 선택은 또다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규제 논쟁에 불을 지피는 듯하다. 그의 비극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 유력한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고인을 죽기 직전까지 따라다니던 ‘악플’이라고 추측된다.
악플은 악성 댓글로서 그 내용이 사람의 인격을 훼손할 정도로 비열한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고인은 스스로 밝히기를 악플에 의연하게 대처한다고 했지만 살아 숨 쉬기가 힘들 정도로 집요하게 인격을 모욕하는 악플러들의 공격 때문에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받았을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에스엔에스상의 악플이 끼치는 해악의 문제는 이미 새로운 문제는 아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좀더 구체적인 규제를 논의해야 할 것이라 판단된다.
기존의 연구나 조사를 살펴보면 ‘인터넷 실명제를 해야 한다’ ‘좀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새로운 법을 제정해야 한다’ ‘포털이 나서 악플을 막아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그 반대 의견보다 강한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국민의 여론이 존재한다는 것은 법적 규제의 사회적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에 대한 규제는 항상 큰 부담이 따른다. ‘표현의 자유’ 또는 ‘언론의 자유’ 때문이다. 그런데 표현의 내용 때문에 누군가의 표현을 못하게 막는 것은 당연히 허용되지 않지만,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 자유가 아니며 모든 표현이 다 헌법적 보장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점은 모든 국가의 공통된 인식이다.
우리 법원이 지적한 대로 온라인은 가장 개방적이고 표현 촉진적인 공간이기는 하나, 거기에서는 헌법으로 보장할 수 있는 표현과 그렇지 않은 표현이 뒤섞여 있다. 즉 헌법에 의해 가장 많이 보장되는 정치적 표현부터 욕설이나 혐오 표현과 같은 불법적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가 전가의 보도가 되어 필요한 규제를 못 하게 된다면, 규제를 통한 공익의 실현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적절한 피해 구제가 어렵게 될 수 있다.
하버드대 로런스 레시그 교수는 인터넷을 규제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터넷이나 에스엔에스 규제와 관련한 논의에서 필요한 것은 규제(대응)의 방식과 정도라는 것이다.
이번 고 설리 사건을 기화로 생각해볼 수 있는 규제는 헌법적인 테두리에서 허용되는 민형사상의 법적 규제이다. 현재 우리의 법적 규제는 온라인 및 오프라인 명예훼손으로 인한 민형사적 규제와 모욕죄에 의한 민형사적 규제가 있다. 형법으로는 모두 신체형 처벌도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이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 때문에 규제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에스엔에스상의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는 모욕죄의 경우에는 최근 경찰에 신고되고 조사받는 건수가 급증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모욕죄 관련 판결을 분석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2017)의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모욕죄 관련 판례를 분석한 결과 약 62퍼센트가 유죄로 판결되었고, 그중 89퍼센트가 벌금형에 처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벌금형의 경우 평균액은 약 89만원 정도로 나타났다.
아울러 모욕죄의 경우 그 표현이 혐오 표현으로 구분될 수 있는 표현이 많으며(32퍼센트), 이런 경우 일반 모욕죄보다 유죄 선고율이 높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 피해 정도가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이는 올해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혐오 표현을 모욕죄로 처벌하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모욕죄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 형법 제311조에서, 모욕에 포섭될 수 있는 혐오 표현의 경우에는 제311조의 2를 신설해 성별·인종·장애·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적 표현을 규제하는 조항을 두도록 개정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경우 그 형량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법 개정 절차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또 다른 방안은 실효성 있는 민사적 피해 구제 방법이다. 다만 소송을 통한 해결은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소송으로 가기 전에, 피해자가 원하면 국가인권위원회나 언론중재위원회 등에서 조정이나 중재로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두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만일 소송으로 가게 된다면, 법원은 필요한 경우에 악플 재발 방지 목적으로 일벌백계 성격이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세계의 선진 국가 중 혐오 표현을 규제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런 지적은 그만큼 규제가 어렵고 때로는 정치적 논리나 이유로 규제를 위한 입법이나 정책 수립이 힘든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지난 몇년간 우리 사회는 악플 때문에 벌어진 사회적 해악을 여러 사건으로 충분히 목격하였고, 이를 규제하고자 하는 사회적 필요성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제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최소한의 규제에 부합하되 실효성 있는 규제 방식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피해자에게 적절한 피해 구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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