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30 16:53
수정 : 2019.10.31 07:58
권도연 샌드박스네트워크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
제법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났을 때, 문득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보곤 할 때, 어려운 순간 한발 뒤에서 상황을 바라보려 애쓸 때 등등. 어른이 되는 게 별거 아니란 생각을 하면서도, 이런 순간들을 설명할 길이 딱히 없어서 의미를 덧붙이게 된다.
돈이 물건 이상의 가치를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가격과 가치는 엄밀히 일치할 수 없다는 걸 체감해나가는 과정이 제법 사회로의 진입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오백원이 과자 한 봉지로 교환되던 세상에서 벗어나서 어떤 물건은 가격을 매기기 힘들 만큼 누군가에게 소중할 수 있고, 상황과 목적에 따라 전혀 가치가 없어지기도 한다는 걸 안 것이다.
처음 구매한 정가 이상의 가치는 좋아하던 영화의 한정판 디브이디(DVD)였다. 열일곱살, 고등학교에 가니 공부 열심히 하라고 주신 세뱃돈이 이용됐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발견한 물건에 과감하게 정가의 3배를 입금했다. 상대는 거래 시간을 정하기 위해 자신이 회사원이라고 소개했고, 왠지 학생임을 들키면 안 될 것 같았던 나는 ‘시간을 맞추기 어려우니 어느 장소에 두고 가시라’고 했다.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이후 한 행사장에서 만난 감독님께 한정판을 내밀며 사인을 요청했을 때,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자랑했을 때를 비롯해 나는 종종 그때 그 세뱃돈을 얼마나 잘 썼는지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에 더 큰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요즘 흥미로운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한 힙합 뮤지션이 티셔츠 판매로 약 2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화제가 됐다. 유명인의 굿즈 판매가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다만 이번엔 인물과 그 방식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래퍼 염따는 최근 유튜브 콘텐츠의 인기와 함께 올해 가장 핫한 인플루언서 중 한명으로 떠오른 인물. 그런 그가 직접 굿즈를 판매, 포장, 배송까지 진행하는 콘셉트를 상품에 부여했고 단 사흘 만에 ‘제발 그만 사’라며 판매를 종료했다.
사실 이번 상품의 가치는 콘셉트보다 스토리에서 나왔다. 티셔츠 대란은 그가 친한 래퍼의 외제차에 사고를 낸 수리비를 벌기 위해 시작됐다. 오랜 무명 시절 후 이제 막 인기와 부를 얻은 그가 ‘이제 나는 다시 티셔츠나 팔아야겠다’며 좌절하는 모습은 팬들에게 웃기고 짠한 광경을 선사했다. 이에 팬들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에 대한 보답, 혹은 요즘 가장 대세인 그의 재미난 광경에 한발 걸치는 마음으로 너도나도 금액을 지불했다. 티셔츠를 사고 싶었다기보다, 그 외의 파급력에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이는 기존에 스타가 팬들과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광고 및 판매를 진행하는 방식과도 또 달랐다.
한편 이번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형성할 수 있게 도와준 조력자도 있다. 바로 플랫폼이다. 그는 유튜브로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개방해 인기를 끌었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수시로 직접 팬들과 소통했으며, 각종 음악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펼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개인의 상품을 자유롭게 팔 수 있게 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판을 벌여 가치를 입증했다. 플랫폼을 중심으로 가치 교환의 개념이 끊임없이 확장됨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오늘도 자신의 티셔츠 배달을 콘텐츠 삼아 팬들과의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다. 너무 많이 쏟아진 주문에 툴툴대며 웃음을 자아내고, 직접 주문자를 찾아가서 선물과 함께 물품을 건네기도 한다. 이벤트겠지만 지불한 가치에 대해 고마움을 보답하고자 하는 모습이 또 한번 인기를 불러일으킨다.
폭발적으로 영역을 확장해가는 굿즈 시장을 볼 때면 나는 한정판 디브이디를 사던 내 모습을 종종 생각한다. 아끼고 좋아하는 만큼 웃돈을 얹던 그 마음.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심인지,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수많은 콘텐츠엔 ‘돈은 준비됐으니 팔기나 해’라는 댓글이 베스트에 오른다. 플랫폼은 스타와 팬의 간극을 좁혀 그 마음을 더 큰 경제적 가치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세대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을 받은 ‘굿즈’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까지 확장될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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