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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5 18:17 수정 : 2019.11.26 09:30

홍은전 ㅣ 작가·인권기록활동가

요즘 나는 장애해방운동 열사 정태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던 정태수는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었던 장애인을 투쟁의 주체로 조직하여 거리에 세운 진보적 장애인운동 활동가였다.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든 사람이기도 한 그는 내가 처음 노들야학 교사가 되었을 무렵인 2002년 심장마비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그는 야학 교장 박경석의 절친한 친구였다. 생전의 그를 만난 적 없는 나에게 정태수에 대한 인상은 그의 장례식에서 눈과 코가 빨개져서 울던 경석의 슬픈 얼굴과 경석이 부르던 태수의 18번곡 ‘의연한 산하’였다. 나는 경석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정태수는 왜 그토록 소중한가요.

1983년 스물세살의 경석은 행글라이딩을 하다 추락하여 하반신이 마비되는 장애를 입고 5년 동안 집에서만 지냈다. 1988년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복지관 직업훈련과정에 입학한 경석은 그곳에서 태수를 만났다. 태수는 나쁜 장애인이었고 경석은 착한 장애인이었다. 복지관은 점심시간마다 훈련생들에게 국민체조를 시켰는데, 일종의 정신교육이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태수는 국민체조 거부 투쟁을 모의했고, 경석은 그 사실을 선생님에게 고했다. 모의는 실패했고 동기들은 경석을 빼고 술을 먹으러 가기 시작했다. 곧 외로워진 경석은 자존심을 접고 다시 술자리를 기웃거렸다. 태수는 장애인 문제는 개인의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탓이라며 세상을 변혁해야 한다고 말했고 경석은 그런 태수에게 조금씩 물들어갔다.

1년 후 졸업한 그들은 동문들의 취업 실태를 조사해 동문회 소식지에 실었다. 90%가 실업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복지관 쪽에서 소식지를 압수해 가버렸다. 장애인들은 취업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경석은 그날에 대해 이렇게 썼다. “농성 첫날 태수가 머리를 빡빡 민 채 나타났다. 장난이 아니었다. 충격이었다.” 멋쩍게 웃는 태수를 보며 경석이 충격을 받은 건 태수의 어떤 결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이 일을 아주 진지하게, 그러니까 장난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국민체조 거부 투쟁을 선생님에게 밀고(?)해놓고선 왜 자존심도 없이 그들과 다시 어울렸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경석은 말했다. “그때 난 이야기할 사람이 우리 어머니밖에 없었어.” 장애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장애인이 세상을 변혁할 수 있다는 말은 경석에게 옳은 말로 하는 거대한 농담 같은 것이다.

당신에게 정태수는 어떤 의미인가요 하고 묻자 경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내가 그 불쌍한 장애인들 속으로 떨어졌으니 인생이 비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 태수가 왔지. 그런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태수는 나한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줬지, 충격적으로.”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는데, 그 순간 경석이 ‘그냥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경석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일으킨 사람이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조직한 사람이고, 내가 처음 야학 교사가 되었을 때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충격적으로 보게 해줬던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나에게 처음부터 열혈 투사였다. 그에게도 데모는 하기 싫지만 술은 먹고 싶고, 술은 먹고 싶지만 친구라곤 어머니밖에 없었던 ‘불쌍한 장애인’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언제나 그저 장난처럼 여겨왔던 것이다. 그것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서, 충격적으로 좋았다.

장애열사들의 생애를 기록하는 일은 마치 완성되어 있던 레고 작품을 해체한 뒤 다시 조립하는 일 같다. 그의 생애를 횡으로 종으로 조직하며 나는 여러 열사들을 만났다. 1984년 휠체어를 탔던 지체장애인 김순석은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쓰고 자결했고, 1995년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은 철거에 맞서 저항하던 어느 날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며, 2002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 최옥란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싸우다 음독을 시도했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정태수가 떠난 자리는 내가 장애인운동을 시작한 자리이기도 하다. 경석은 눈과 코가 빨개져서 울었고 태수의 18번곡인 ‘의연한 산하’를 불렀다. 그는 2001년 나에게 혁명처럼 닥쳐온 그 세상이 실은 아주 느리고 치열하게 조직되어 온 거대한 우주였음을 노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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