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2.12 18:05 수정 : 2019.12.13 02:37

박권일 ㅣ 사회비평가

“문제는 비명을 지르지만 해법은 속삭인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고발과 비판 대신 해법에 초점을 맞춘 저널리즘이다. 해외 언론에서 처음 제기되었으나 최근 한국에서도 ‘핫’한 의제다. 특히 <미디어오늘> 이정환 대표, 강준만 전북대 교수 등이 열렬히 설파하는 중이다.

나날이 신뢰도가 추락하는 와중에도 언론은 ‘나쁜 뉴스’를 쏟아내며 쇠락을 재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 비평 매체 대표와 진보적 언론학자가 솔루션 저널리즘에 주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쉽게 말해서 이제 언론은 무작정 ‘까대지만’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게 하고 여론을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위한 비판’에 그치는 관행을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솔루션 저널리즘을 미래 언론의 대안 모델로 제시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솔루션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다. 앞서 “문제는 비명은 지르지만 해법은 속삭인다”는 말을 인용했다. 그러나 저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비명을 지르고, 해법은 제각기 절규하며, 끝내 최악의 해법이 실현된다.’

어떤 사회문제는 단순한 기술적·심리학적 무지나 오해에서 발생한다. 그렇기에 생각보다 쉽게 개선될 수도 있다. ‘넛지’(nudge) 이론이 소개하는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팔꿈치로 쿡쿡 찌르는 것’ 같은 자유주의적 개입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비효율적으로 설계된 교통신호 체계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 언론은, 문제를 쉬운 언어로 알리고 전문가의 솔루션을 소개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 사회적 갈등은 이해관계, 정체성, 정치적 진영논리, 종교까지 얽혀 있는 복마전이다. 그리고 네이버 댓글부터 <조선일보>의 ‘훈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나름의 솔루션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그게 ‘누구를 위한 솔루션’이냐는 거다. 모든 사람이 미디어이자 ‘기레기’인 시대, 긍정적 의미의 ‘권위’가 증발한 시대에 진정한 ‘공공의 해법’이라는 점을 누가 보증하는가? 특히 치열하게 갈등하는 사안일수록 공공성의 논리보다 힘과 돈의 논리로 해법이 결정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재벌 이익을 보호하는 법은 ‘빛의 속도’로 제정되는 반면, 노동자 그만 좀 죽이라는 법은 온갖 예외조항이 줄줄이 달려 누더기가 되고 만다. 지역, 성별, 나이, 취향, 좌우 이념을 떠나 온 국민이 염원해온, 그야말로 “우리의 소원”급 사회문제인 ‘공인인증서 폐지’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상태다. 과연 언론이 솔루션을 제시하지 않아서, 혹은 솔루션을 몰라서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인 걸까?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다.

한국 언론의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다. ‘답’이 아니라 ‘질문’을 제대로 던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교육”을 운운하면서 ‘명문대 입시’와 ‘계층 사다리’와 ‘개천의 용’만 떠들어대는 언론, ‘청년실업’과 ‘청년빈곤’을 논하면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출신자만 취재하는 언론이 적확한 솔루션을 내놓는 건 불가능하다. 잘못된 질문에서 생산적 논의와 좋은 해답이 나올 리 없다.

이런 면에서 지금 <한겨레>에 연재되는 기획 기사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은 답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질문을 잘 던진 모범 사례다. 그 기획은 소위 ‘조국 사태’를 포함해 그간 청년 세대 담론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청년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적절히 시각화함으로써, 오랫동안 은폐된 문제를 새삼 환기했다. 이렇게 ‘질문을 잘 던진 기사’야말로 언론이 사회에 할 수 있는 최대의 기여 중 하나다. 물론 문제를 예각화하면서 대안도 내놓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테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돌연사 고위험군인 기자의 노동조건부터 개선해야 한다.

강조하건대 솔루션 저널리즘은 필요하다. 해법에 공들인 기사는 당연히 중요하며 앞으로 언론이 신경 써야 할 지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언론은 사회문제의 해결사나 최종 심급일 수 없으며 그렇게 자처해서도 곤란하다. 솔루션은 결국 시민들, 정치의 몫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질문을 잘 던지기만 해도 된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야심찬 목표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