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7 17:45
수정 : 2019.12.18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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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이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타다금지법) 등 안건을 의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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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이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타다금지법) 등 안건을 의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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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영국 태생이 150년도 더 지나 한국 땅에서 이렇게나 자주 불려 나와 쓰일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자동차 시속을 4마일(6.4㎞, 도심 2마일)로 제한하고,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통제하도록 했다는 그 법 말이다. 본명(기관차 도로법·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은 희미하고 ‘붉은 깃발법’이란 별명으로 선명하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걸림돌로 여겨진 은산분리 제도에 이어, 이른바 ‘타다 금지법’(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에 이 딱지가 덧붙고 있다.
지금에야 우스운 규제 장치로 보이고 오로지 기득권(마차산업) 지키기였다고 하나, 당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땐 도로 상태가 엉망이었고, 자동차라는 게 육중한 증기기관으로 소음이 엄청났으며, 말과 마차가 운송의 중심을 차지하던 시절이라 승객과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붉은 깃발법이란 딱지를 받은 여객법 개정안은 일정한 기여금을 내고 ‘플랫폼운송 면허’를 받으면 총량제 안에서 택시처럼 합법적으로 운송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타다 서비스는 지금과 달리 면허를 취득해야 합법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타다 쪽에선 추가 비용을 물어야 할 처지여서 반발할 법한데, 개정안은 정부와 모빌리티 업계가 1년가량 논의를 벌여 만든 ‘7·17 택시제도 개편방안’을 반영한 것이다. 느닷없이 들이밀어진 게 아니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는 타다에 대한 검찰의 기소(10월28일)였을 뿐이다.
현행 택시업은 면허를 확보하고 차량을 구입하고 일정한 경력·자격의 기사를 둬야 하며 차량 외관, 요금, 운행 지역의 규제를 받지만, 타다 서비스는 그렇지 않다. 유사 서비스임에도 전혀 다른 규제 환경에 들어 있다. 불공정 시비를 낳는 대목이다. 이는 택시 서비스에 고객 불만이 큰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요금 규제로 서비스 질에 따른 보상의 차이가 없으니 택시 기사는 굳이 친절 응대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고, 고객 쪽에선 요행히 친절한 택시를 만났더라도 서비스 재구매의 길을 찾기 어려우며, 택시 회사로선 서비스 질 제고를 위한 재투자의 이유가 별로 없는 악순환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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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한 주차장에 서 있는 타다 차량.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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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택시가 도입되면 택시업계의 이런 구조에 변화가 일 수 있다. 탑승 거리나 시간에 따른 요금 외 규제를 풀면 다양한 요금체계에 맞춰 애견 동승 따위의 여러 부가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갖춘 플랫폼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택시 기사를 적절히 관리해 서비스 질을 높이고, 고객 입장에서는 맞춤형 운송 서비스를 재구매하게 되고, 회사 쪽의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기존 택시 업체들을 자극할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과 결합하는 사례도 생겨날 수 있다. 쏘카의 자회사로 타다를 운영하는 브이씨엔씨와 달리 코나투스(반반택시), 케이에스티모빌리티(마카롱택시) 같은 스타트업 업체들과 카카오모빌리티, 우버는 법 개정안을 원칙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현실이 이런 기대감을 높인다.
여객법 개정안과 관련해선 풀어야 할 후속 숙제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플랫폼 면허 사업자 수, 기여금 수준, 서비스의 지역 단위, 차고지 규정, 렌터카 허용 여부 따위를 정해야 한다. ‘타다 금지다, 아니다’라는 식의 논란보다는 후속 과제로 논의의 초점을 옮기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일이 이렇게 진행된다면 여객법 개정안은 신규 서비스 등장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협상과 타협을 통해 풀어낸 좋은 선례로 기록될 수도 있다.
혁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하지 않고는 혁신 그 자체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게 현실이다. 택시 기사들의 잇따른 분신 사태에서 이미 경험한 바다.
‘붉은 깃발법’은 제정 31년 만인 1896년에 폐지됐다. 기술 진보로 내연기관이 퍼지고 자동차 산업이 성장한 데 따른 변화였다고 한다. 이 법 탓에 영국이 자동차 산업에서 다른 나라들에 뒤처졌다는 얘기는 한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역사적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는 선명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김영배ㅣ논설위원
kimyb@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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