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8 11:17
수정 : 2019.12.18 11:30
HPV(Hour per Vehicle)는 차 한대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뜻한다. UPH(Unit per Hour)는 시간당 생산할 수 있는 자동차 대수이다. 모두 자동차업체의 생산성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그동안 한국 자동차업체들은 글로벌 경쟁사보다 생산성이 뒤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 예로 보수언론은 현대차 울산공장의 HPV가 26.8시간으로 일본 도요타의 24.1시간, 미국 지엠의 23.4시간에 비해 떨어진다고 강조한다. UPH 사정도 비슷하다.
HPV와 UPH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공장의 자동화, 투입인원, 작업속도, 공장 설립연도, 생산설비 규모·수준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업체가 앞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같다.
최근 현대차 울산공장의 ‘와이파이 사태’가 논란이다. 현대차가 안전사고 위험을 이유로 공장 내 와이파이를 차단하자, 노조가 노사합의 파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회사가 접속을 재개하고 19일까지 노사협의에 들어갔지만, 양쪽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일이 너무 힘들어 눈물이 날 정도였다.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25년 전 삼성차 임원이 기자에게 털어놓은 말이 기억난다. 삼성차는 출범을 앞두고 임원들을 일본 자동차업체에 보내 현장실습을 시켰다. 일본업체의 노동강도는 악명이 높다. 노동강도가 살인적인 것은 분명 문제지만, 휴대폰·신문을 볼 정도로 느슨한 것도 문제다. 노동연구원의 한 박사는 “작업 중에 딴짓하는 것은 근로자의 윤리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현대차 노조 위원장에 온건 실리파로 불리는 이상수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고용안정을 공약으로 걸었다. 현대차의 생산성이 떨어져 실적이 나빠지면 고용 감소, 임금 하락이 불가피하다. 더구나 현대차는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미래차시대 대처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전기차시대가 본격화하면 엔진·변속기 등의 생산이 필요 없어, 2025년까지 인력이 40%까지 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고용안정을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부족할 판에 ‘와이파이 사태’는 너무 뜻밖이다.
이상수 당선자는 “회사가 경영 전반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플랜을 제시하면 충분히 동조해 줄 수 있다”고 노사협력 뜻을 밝혔다. 한국의 노사협력 점수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경영계가 그 책임을 노조에 전가하는 것은 분명 ‘궤변’이다. 하지만 ‘와이파이 사태’는 그 궤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곽정수 논설위원
jskwak@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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