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9 18:27
수정 : 2019.12.20 09:49
정인환 ㅣ 베이징 특파원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한 것은 2017년 11월29일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그해 12월22일 대북 원유 공급 제한과 국외 북한 노동자 송환을 뼈대로 한 결의 제2397호를 채택했다. 그해에만 8월과 9월에 이은 세번째 대북 제재 결의였다. 새 결의가 채택될 때마다 ‘사상 가장 강력한’이란 수식이 붙던 때다. 결의 2397호 28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안보리는 북한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북한의 결의 이행 여부를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는 제재를 강화, 변경, 유예, 해제하는 문제를 포함해 제재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할 준비가 돼 있음을 확인하며….”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남북 정상회담이 세차례, 북-미 정상회담은 두차례 열렸다.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도 이뤄졌다. 격정의 나날을 지나왔는데, 다시 보니 제자리다. “북한의 행동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던 안보리는 대체 뭘 했나? 지난 11일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한 안보리가 미국의 요구로 소집됐다.
처음부터 ‘제재’가 문제였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부터 그랬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회담 이틀 뒤인 6월14일 기자회견에서 “완벽한 비핵화를 이뤄낼 것이다. 그런 뒤에야 대북 제재 해제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 목표여야 할 ‘완벽한 비핵화’를 제재 해제의 전제로 삼은 것이다.
처음부터 북한은 생각이 달랐다. <노동신문>은 2018년 6월13일치에서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성과를 설명하면서 “미 합중국 대통령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개선이 진척되는 데 따라 대조선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의향을 표명하였다”고 전했다. ‘새로운 북-미 관계 → 항구적 평화 체제 → 비핵화’로 이어지는 단계마다 북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가 있을 것으로 여겼다.
11일 안보리 회의를 보면 중국과 러시아도 같은 생각이다. “북한의 안보적 우려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제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장쥔 중국 대사) “안보리가 한반도 상황에 대한 정치적 결의를 채택할 시점이 됐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선 신뢰구축 조처부터 시작해야 하며, 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이행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바실리 네벤자 러시아 대사)
중-러는 17일 대북 제재 일부 완화를 뼈대로 한 결의안 초안을 안보리에 제출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현재 한반도는 중요하고도 민감한 형세에 접어들었다. 정치적 해결의 긴박성이 진일보 상승했다”며 결의안 제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로이터> 등은 중-러가 제안한 대북 제재 유예(해제) 대상에 △해산물·섬유 등 수출 금지 해제 △국외 북한 노동자 송환 시한 폐지 △남북 철도·도로 협력사업 제재 유예 등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특히 북 노동자 송환은 2397호 채택 만 2년을 맞는 22일이 시한이다. 신속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4·27 남북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두고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열어 ‘경제개발 집중’을 새로운 노선으로 채택했다. 미국에 대화 재개의 시한으로 못박은 연말을 앞두고 북은 당 중앙위 7기 5차 전원회의 개최를 예고했다.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뜻이다. 중-러의 초안에 대해 미국은 다시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니다”란 반응을 보였다. 처음부터 ‘제재’가 문제였다.
inhwan@hani.co.kr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