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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2 18:02 수정 : 2019.12.23 02:37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은 소리에 높낮이를 주거나, 늘이거나, 짧게 끊거나, 뜸을 들이는 방식으로 말하는 이의 의도를 다양하게 담는다. 이에 비해 글은 평평하여 목소리를 담지 못한다. 이를 흉내 내려고 기호를 쓰는데, ‘?’를 붙이면 말끝을 올리고 ‘!’가 나오면 감탄하는 마음이 생기며 ‘…’ 앞에서는 말끝을 흐린다. 그중에 괄호가 있다.

소인배인 나는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졌다. 말을 하면서도 머릿속에 따로 떠오른 생각마저 주절대니 난삽하다. 학생들한테 한 학기 공부한 보람을 묻는 질문지를 만들면서도 이런 식이다. ‘강의 내용 중에서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 있었나요?(있기나 하겠습니까마는….)’ 나에게 괄호는 마음속에 떠오른 딴소리를 묻어두지 않고 드러내는 장치다. 관객한테 들리도록 하는 혼잣말이다. 방금 한 말이 온전하지 않아 비슷한 말이나, 덧붙이는 말이나, 대꾸하는 말을 한다.

괄호는 제 목소리를 갖지 못한 말이고, 철저히 ‘을’이다.(수학에서 괄호는 ‘갑’이다. ‘3* (2-1)’은 괄호부터 계산해서 ‘3’이다.) 괄호 다음에 오는 조사는 괄호 안의 말을 무시하고 원래의 말에 맞추어 붙인다. ‘모레(수요일)는’이라고 하지, ‘모레(수요일)은’이라고 안 쓴다. 그래서 짐짓 읽고도 읽지 않은 듯, 말하고도 말하지 않은 듯 해야 한다. 하지만 목소리 없는 이 군더더기는 지금 매끄럽게 내뱉는 말의 뒤편에 실은 다른 표현이 철철 넘친다고 소리친다. 괄호 속 존재는 소거되어야 할 잉여가 아니라 복권되어야 할 아우성이다. 그래서인지 괄호를 보면 혁명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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